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부사업도 법적 제도와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뿌리내리기 쉽지 않다. 정책 수요 대상이 민간이 아닌 정부라면 더욱 그렇다.
조달청이 올해 초 내놓은 ‘공공 소프트웨어(SW)사업 분할 발주’ 제도가 딱 그런 모양새다. 김상규 청장이 1년여 전 취임과 함께 제시한 주요 역점 사업이다. 기존 일괄 발주하던 SW 제품 설계와 구현 공정을 분리해 발주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SW 제값 주기를 실현하고 SW설계 전문인력 양성 등 취약한 국내 SW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내린 특단 조치다.
최근까지 미래부와 부산시, 광명시 등 6개 부처 및 지자체에서 조달청 공공SW 분할발주 시범 사업에 참여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똑같아 보이는 분할 발주 사업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용어가 다르다. 사업 참여 6개 기관 중 3곳은 설계 분할 방식을, 나머지 3곳은 설계 우선 방식을 채택했다.
분할 발주 사업에 굳이 토를 단 모양새가 이상했다. 조달청에 확인했더니 설계 분할 방식은 발주를 설계와 구현 2회에 걸쳐 나눠서 하는 분할발주 사업 취지 그대로 방식이고 설계 우선 방식은 예전처럼 일괄 발주를 하되 그 안에서 설계사업자와 구현사업자가 업무를 분담해 진행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엄밀히 따지면 설계 우선 방식은 일괄 발주와 분할 발주 사업 중간쯤 되는 셈이다. 두 용어 설명을 들으면서 조달청이 얼마나 공공기관을 설득하기 힘들었으면 굳이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 분할발주 사업을 유도했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까지 SW 분할발주를 선뜻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공공기관은 많지 않다. 발주 절차가 2회로 늘어나 행정적 부담이 큰데다 법적으로 제도화되지 않아 강제성이 없으니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SW 분할발주는 국내 고질적인 공공기관 발주 체계를 선진화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더는 눈치 보지 말고 공공기관이 앞장서야 한다.
신선미 전국취재팀 부장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