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천 유럽 홀린 12명 한국 게이머 "우리가 e스포츠 성장엔진"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벤츠 아레나 1만2000여 좌석이 꽉 찼다. 한국 프로게이머 12명이 등장하자 자리를 채운 유럽 젊은이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최고 59.55유로(7만5000원)짜리 티켓은 진작에 다 팔렸다.

라이엇게임즈가 주최한 ‘2015시즌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2015 롤드컵)’이 SK텔레콤 T1 우승으로 끝났다. 한국팀(SKT T1 vs KOO타이거즈)끼리 붙어 맥이 빠질 법도 했지만, 세계 최고 수준 게임플레이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흥분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객석에선 간간히 ‘SKTelecom T1(SK텔레콤이 후원하는 프로게임단)’이라고 적힌 응원 팻말을 든 유럽인들이 보였다. SK텔레콤이 어떤 회사인지 아냐고 묻자 “한국 통신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공식 해설진 중 한 명은 한복을 입고 경기를 중계해 눈길을 끌었다.

3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전에서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한국팀끼리 붙은 이날 결승전은 1만2000석 좌석이 매진됐다.
3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전에서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한국팀끼리 붙은 이날 결승전은 1만2000석 좌석이 매진됐다.

이날 결승전은 세계 각국에서 100여개 매체 120명 이상 기자들이 취재했다. 게임 전문매체는 물론이고 BBC, 르몽드, 르피가로 같은 일반 매체들도 현장을 찾아 열기를 담아갔다.

권정현 라이엇게임즈코리아 e스포츠커뮤니케이션본부장은 “프랑스, 벨기에 등 약 한 달간 유럽에서 진행한 본선을 통해 리그오브레전드(LOL, 롤)와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느꼈다”며 “롤을 기점으로 세계 전역에서 게임리그를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보편화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스포츠가 주목받으면서 한국도 덩달아 주가가 올랐다. 한국은 2000년대 ‘스타크래프트’ 흥행을 타고 자생적으로 e스포츠 생태계를 만들었다. 클럽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해외 프로게임단에 비해 한국 프로게이머들은 대기업 후원 아래 체계적인 관리를 받는다. LOL 프로팀을 운영하는 국내 대기업은 2015년 현재 삼성전자, SK텔레콤, KT, CJ, 대한항공(진에어) 5곳에 달한다.

e스포츠협회(KeSPA) 같은 조직을 만든 곳도 한국이 유일하다. KeSPA는 올해 롤드컵 결승전에 전담인력을 파견해 해외팀 전력 분석을 도왔다. 세계 유수 롤 클럽팀들은 지난해 말부터 한국 선수 영입에 나섰다.

세계는 빠르게 e스포츠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라이엇게임즈는 세계 각지에서 수백명 규모 e스포츠 전문 그룹을 운영한다. e스포츠 방송시스템이나 방송사가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서는 직접 전문 캐스터를 양성해 투입한다. 이번 대회에서 오픈형 게임부스를 설치해 관객과 선수 거리감을 좁히는 등 일부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 기술과 노하우를 갖췄다.

브랜든 백 라이엇게임즈 대표는 “기존 프로 스포츠단을 운영 중인 오너들과 (롤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는 것을)계속 논의 중”이라며 “선수 연봉 지급, 관리 등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 상당히 큰 규모의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 브라질 기업 등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웨일런 로젤 라이엇게임즈 e스포츠 총괄은 “세계 각지에서 강력한 지역 리그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강조했다. 자사 e스포츠 운영 노하우를 세계 곳곳에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승현 라이엇게임즈코리아 대표는 “본사가 한국 e스포츠 사례를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결승전을 찾은 전병헌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회장(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롤드컵 결승전을 한국팀끼리 치른 것은 e스포츠가 세계시장에 정착하는 시기에, 국내 생태계가 그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한국이 e스포츠 성장엔진임을 증명한 셈”이라고 말했다.

3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에 모인 2015 롤드컵 관람 인파.
3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에 모인 2015 롤드컵 관람 인파.
3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에 모인 2015 롤드컵 관람 인파.
3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에 모인 2015 롤드컵 관람 인파.

베를린(독일)=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