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모바일결제 사업자가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를 하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플라스틱 카드 전유물인 MST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게 되겠습니까?”
“애플 견제하려고 내놓은 반쪽짜리 부가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삼성월렛 실패를 그대로 답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성전자가 모바일결제시장에 ‘삼성페이’를 내놓는다고 했을 때 전문가들이 보였던 반응이다.
삼성페이 출시 후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 경제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이 안 되는 곳에서 삼성페이는 된다(Samsung Pays Where Apple Can’t)’는 제목의 리뷰 기사에서 “애플페이는 쉬운 휴대폰 결제 수단이지만 결제할 곳을 찾기 쉽지 않다”며 “하지만 삼성페이는 거의 모든 결제 기기에 쓸 수 있다”고 평가했다.
포천도 삼성페이가 애플페이보다 더 많은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를 지원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삼성페이 등장으로 모바일 결제 시장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MST 기술을 가진 미국 루프페이를 인수했고 별도 장치가 없어도 기존 카드결제 단말기의 마그네틱 결제부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IT 전문 매체인 테크인사이더는 “스마트폰을 일반 신용카드처럼 쓸 수 있는 삼성페이를 체험해보니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고 호평했고 야후테크와 기즈모도 역시 삼성페이 호환성을 높게 평가했다.
◇삼성페이, 한국 이어 미국 연착륙…치밀한 전략의 비밀
지난 8월 국내에 출시한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삼성페이 누적 가입자는 1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누적 결제금액도 1000억원을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5, 갤럭시S6엣지 플러스 등 신형 스마트폰 인기로 삼성페이 가입자가 꾸준히 증가했다.
결제 건수는 하루 10만건을 넘어섰다. 결제금액은 서비스 도입 초기 하루 7억~8억원 수준에서 현재 20억원 이상으로 늘었다.
연내 멤버십 포인트 적립 기능을 도입하고 교통카드 기능도 추가된다. 삼성페이가 국내 핀테크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삼성페이가 혁신 아이콘으로 부상한 이유를 알려면 사업화 과정에 숨겨 있는 치밀한 전략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범용성과 보안성을 한꺼번에 잡은 ‘와이파이 전략’이다.
박재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상무는 “소비자는 쇼핑할 수 있는 곳에서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사용하지,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곳에서 쇼핑을 하는 게 아니다”고 정의했다.
◇왜 MST였나, 그 판단은 맞았다
삼성전자는 처음부터 이런 목표를 염두에 두고 MST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MST는 그저 멀티모드 일부일 뿐이다. 멀티모드는 NFC와 MST를 모두 지원해 범용성을 극대화했다.
모든 모바일 지갑 목표는 소비자가 실제로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전략이 삼성페이에 담겨 있다. 사실상 모든 곳에서 결제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다면 소비자 경험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삼성페이가 MST결제방식을 들고 나온 것은 철저하게 소비자 결제 습관을 편리하게 유지하고 리스크가 되는 보안 부문은 지문인증 등으로 수준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모바일 결제에선 보안 수준을 강화하고 카드번호 유출·오용을 막기 위해 실물 카드 정보 대신 토큰을 사용한다.
삼성전자도 강력한 토큰 보안 방식을 채택했다.
토큰을 사용하면 독자적 암호화와 자체 보안 설정으로 거래 형식이나 경로 등을 제어할 수 있고 정보가 외부로 유출돼도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다.
토큰 사용으로 얻는 또 하나의 장점은 기존 플라스틱 카드를 이용한 결제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큰과 실물 카드 번호 간 치환은 TSP(Token Service Provider) 서버에서 이뤄지므로 은행·가맹점 등은 기존 시스템 변경 없이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 삼성 페이는 MST로 결제할 때 이 토큰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토큰 방식 채택으로 일반 플라스틱 카드 포인트 적립 등이 되지 않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는 카드사와 협업해 고정형 토큰 방식을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삼성페이 전략 핵심은 ‘사용자’
수많은 페이가 시장에 쏟아지고 이용방식도 제각각인 가운데 삼성페이의 중요한 핵심전략은 소비자에게 맞춰져 있다.
최근 일부 소비자는 삼성페이가 기존 플라스틱 카드 서비스인 멤버십과 마일리지, 현장할인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불편도 올 연말이면 모두 해결 가능하다. 삼성페이 보안인증 방식을 카드사와 전면 개편하기로 합의하고 시스템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삼성페이는 마그네틱보안전송(MST) 방식으로 기존 결제 단말기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을 지녔지만 보안인증 문제로 일반 카드가 제공하는 마일리지 적립과 멤버십 서비스, 현장할인은 불가능했다.
삼성전자와 카드사는 OTC 방식을 버리고 가상번호를 바뀌지 않는 고정번호로 치환하는 형태인 ‘고정 토큰’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 방식을 적용하면 가상 토큰 번호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일반 플라스틱 카드처럼 실거래 인증을 할 수 있다.
연말을 목표로 시스템을 전환한다. 고정 토큰 방식이 적용되면 장애요인이던 주유소, 호텔 등에서 일반 카드와 동일한 적립,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삼성페이 진화는 일반 플라스틱 카드와 경쟁구도를 형성할 정도로 강력한 파급력이 예상된다. 신용카드 고객 상당수는 제휴 할인과 마일리지 적립을 사용 최우선 요인으로 꼽는다.
이 같은 소비자 관점을 파고들어 삼성전자가 참여 카드사의 협조를 이끌어냈고 단기간 허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여기에 모바일카드 진영을 끌어들여 사실상 국내 모든 카드거래 플랫폼을 연동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중저가 스마트폰으로 삼성페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여기에 웨어러블 기기까지 가세하며 사용기기를 늘리는 전략적 노림수도 준비했다.
소비자 결제 경험을 좌우하는 교통카드 기능 탑재는 물론이고 포인트 혜택까지 연동하면서 삼성전자는 애플, 구글 페이를 뛰어넘는 강력한 사용자 편의성을 제공할 전망이다.
◇오프라인 시장 겨냥, 또 하나의 승부수
또 하나의 노림수가 있다. 대부분 페이가 온라인 결제 시장을 겨냥했다면 삼성전자는 역으로 오프라인 가맹점을 집중 공략했다. 다양한 페이 관련 서비스업체와 차별화함으로써 시장 지위를 확보했다는 평가다.
카카오페이, 페이나우, 네이버페이 등이 온라인 결제 시장에 집중한 반면에 삼성전자는 신용카드 가맹점 기반으로 오프라인 결제 시장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 250만여개의 오프라인 결제를 연동함으로써 플라스틱 카드 패턴을 그대로 스마트폰에 옮겨 담는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는 삼성전자 미국시장 진출에도 강력한 무기가 될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온라인 중심으로 강력한 시장을 형성한 애플페이가 NFC를 활용해 오프라인 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알리페이도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결국 초기 ‘페이 전쟁’은 오프라인에서 판가름나고 이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사장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삼성페이는 세계 2200만개 매장에서 사용이 가능하고 중국에서는 약 600만개 가맹점에 연동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한국과 미국 출격으로 일단 삼성페이 연착륙은 성공했다. 하지만 애플, 구글, 은련 등 세계 모바일 결제 사업자는 NFC 진영을 형성하며 막대한 투자비를 바탕으로 NFC 결제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
삼성페이가 MST를 바탕으로 NFC시장에 장기적으로 진출하겠지만 막대한 선행 투자를 한 기업과 격차는 어쩔 수 없다. 초기 시장에 성공하긴 했지만 NFC 전이는 대세다. 중장기 전략을 바탕으로 NFC 기반 전략을 지금부터라도 다시 짜야 한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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