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이어지는 서버, 스토리지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지정 논란. 그 핵심은 과연 국산 서버, 스토리지가 있는지 혹은 그 제품은 믿을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외산 서버업체의 이 같은 공격에 중소업체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대부분 대만이나 중국에서 부품을 들여와 조립해 판매한다. 대신 자체 브랜드를 달고 국산 서버로 판매된다. 사실상 외산 조립품에 해당하지만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 받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관련 규정에 따라 중소기업이 국내 생산시설을 구축해 제조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조립도 생산, 제조 과정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산 서버, 스토리지 논쟁은 뜨겁다. 우리나라에는 왜 순수 국산 장비를 볼 수 없을까.
‘타이콤 프로젝트’는 국산 서버 개발 효시라 볼 수 있다. 1989년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외산 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한 주전산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정부 주도 아래 삼성전자, 금성사(현 LG전자), 현대전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당대 최고 기업과 연구기관이 투입됐다. 이 결과물은 2000년대 정부 공공망에 적용됐지만 이후 저렴하고 성능이 좋은 외산 서버에 밀려 사라졌다.
2000년대 중반까지 삼성전자도 x86서버 사업을 했다. 한때 한국HP에 이어 시장 2위까지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사업을 포기했다.
이후 국산 서버는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HP, 델, 레노버 등 외산업체가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자체 기술을 가미한 국산서버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조립제품에 브랜드만 국산이다.
전문가들은 국산 서버를 ‘못 만드는’ 게 아니라 ‘안 만드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적어도 국산 서버라 함은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 등 핵심 부품이나 이를 담는 주기판, 섀시 중 하나라도 자체 설계하거나 제조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자체 개발한다 해도 시장이 없다. 이미 인텔, 삼성전자 등이 시장을 장악했다. 또 중국이나 대만 제조업체가 엄청난 제조공정을 동원해 부품을 찍어내고 있다. 가격경쟁에서 밀린다.
한 중소 서버업체 관계자는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을 추진하면서 국산서버가 아니라는 공격 때문에 실제 주기판 설계를 시도했다”며 “하지만 자체 개발, 생산해도 대만산 모드와 비교할 때 가격이 절반 이상 높아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중소 서버, 스토리지 업계는 이 같은 문제점도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되면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사 직전의 중소업계에 공공시장이 열린다면 이로써 매출 신장, 기술개발 투자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어디까지나 ‘모범답안’일 뿐 무늬만 국산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국산 컴퓨팅 장비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미국 사례에서 보듯 미래에는 IT주권이 또 하나의 권력으로 떠오른다. 90% 이상 외산 서버, 스토리지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에는 큰 위협이 된다.
현재 미래부는 지난 2013년 발표한 ‘ICT장비 경쟁력 확보방안’ 일환으로 저전력 x86서버를 개발한다. 이 사업은 인텔과 ARM 등의 저전력 프로세서를 탑재해 전력 효율성을 높인 x86서버 개발이 목표다. ETRI, FA리눅스, KTNF 등 연구기관과 중소 서버업체가 참여했다.
이 제품이 주목받는 것은 기존 기술을 쫓아가는 ‘추격 R&D’가 아니라 ‘선도 R&D’라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R&D는 상당수 시장 주류를 따라가는 추격 R&D가 많았다. 이번 사업은 HP, 델, 인텔 등도 시장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블루오션을 노린다. 특히 HW뿐만 아니라 운용체계(OS), 관리 도구까지 개발해 진정한 토털 토종 솔루션을 목표로 한다.
저전력 서버가 국산 서버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단순히 국산 장비를 개발했다는 게 끝이 아니라 이를 공급할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기관부터 적극적으로 도입할 의지가 중요하다. 서울시는 미래부와 함께 검증된 중소 ICT장비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성능 검증이 끝난 장비는 추가 도입 후 인증서까지 준다. 서울시와 같은 도입 사례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
또 국산장비가 세계로 수출할 수 있는 경쟁력 확보도 필요하다. 중국과 일본 정부는 자국 서버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계적 성능인증기관과 손잡고 지원하고 있다. 투입하는 예산만 1000억원이 넘는다.
현재 중소 서버, 스토리지 기업 중 매출 100억원이 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러다 보니 자체 R&D는 엄두도 못 낸다. 정부가 이들과 함께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필요성이 커진다. 하지만 미래부의 서버, 스토리지 부문 신규 R&D 예산은 2년째 ‘제로’에 가깝다.
ETRI 관계자는 “현재 저전력 서버 개발을 비롯해 중소장비 시험 검증까지 기술 및 신뢰성 확보 사업이 다양하게 진행된다”며 “중소 ICT 장비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중소업체 개발 의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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