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핵심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우려한다. 국정원은 최근 반도체 소자, 장비, 소재 업계를 대상으로 활발한 ‘계도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몸만 가라, 도면이든 USB든 가지고 나가다 적발되면 법대로 처리한다’는 것이 계도 활동 요지다. 이런 움직임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국정원도, 산업계도 잘 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미국에서 설움을 딛고 메모리 설계 기술을 배워온 대리, 과장은 지금 사장급 인사로 한국 반도체 대기업을 이끌고 있다. 자국에서 은퇴한 일본 고령 엔지니어가 그간 노하우를 전수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산업계 고위 관계자들이 그들에게 지급한 거액 기술 고문료가 아깝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1위인 우리 기술을 배우려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굉장히 높다. 하이디스 기술을 집어삼킨 중국 BOE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삼성과 LG를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는데 메모리도 그리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지난 1999년 현대와 LG의 반도체 빅딜 이후 회사를 빠져나온 LG반도체 직원은 대만과 동남아 기업체에 입사해 우리 기술을 심었다. 대만 시스템반도체, 동남아 지역 후공정 경쟁력은 따지고 보면 LG반도체 출신 인사의 지식과 경험에서 생긴 것이다. 결국 사람이다. 설계 도면도 공정 프로세스도, 골든 수율도 사람이 만든다.
밖에서 필요한 인재는 한국에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창업할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반도체 분야에서도 카카오와 같은 성공한 벤처가 나올 수 있다면 우리 산업 생태계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중국 아닌 한국에서 그들이 가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얘기다.
연말 인사 철에 승진 임원 명단이 언론 보도를 장식하지만 떠나는 이들은 말이 없다. 중국은 이들에게 거액 계약금과 채용 기간을 보장한다. 떠나는 전문가를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법으로 막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에게 은퇴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도체 분야 카카오 탄생을 위해 구체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한주엽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