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서해대교 낙뢰 사고가 국가 차원의 잘못된 주요시설물 피뢰설계에서 기인했다는 전문가 주장이 나왔다. 63빌딩과 비슷한 높이로 2000년 완공된 서해대교 주탑에 설치된 피뢰침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일부 지적까지 제기돼 정밀 조사 결과가 나오면 상당한 기술적 파장이 예상된다. 전국 사장교와 주요 고층시설물에 대한 종합적인 피뢰설계 점검과 작동 유무 확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덧붙여졌다.
서해대교 주탑 4곳 정점에 각각 피뢰침이 설치됐지만 지름 280㎜ 케이블 곳곳에 불이 붙어 3개 케이블이 끊어졌다. 사고 당시 낙뢰가 피뢰침으로 유도되지 않고, 다리를 지탱하는 강선(케이블)을 직접 강타했다. 이 때문에 피뢰설비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불이 붙은 철강케이블 역시 낙뢰를 막을 수 있는 아무런 설비가 없었다.
피뢰침은 낙뢰를 유도하는 설비로, 최초 낙뢰를 유입해 접지선(인화도선)을 거쳐 땅으로 전기력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화도선 접지 불량이나 노후로 낙뢰를 유도하지 못했다.
오히려 낙뢰는 강철케이블을 강타하며 케이블 내부 윤할유와 만나 화재를 일으켰다. 결국 케이블이 낙뢰전류 이동경로 역할을 한 셈이다. 낙뢰를 땅으로 흘려보내는 접지·접속 계통이 단락되거나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김정태 대진대 전기전공 주임교수는 “낙뢰로 인한 화재라면 낙뢰와 케이블 내 가연성물질이 만나 불을 냈거나 강철케이블과 방전이 일어나면서 불이 붙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정확한 현상 조사를 통해 국가 표준 적용 강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해대교 완공 당시 KS 표준은 피뢰침 1개 당 일반시설물은 60도, 위험물은 45도까지 보호하도록 설계한다. 그 뒤 2004년 이후 표준은 보호 범위도 강화된 데다 금속구조물 본딩(접속·접지)을 포함해 연결부위마다 피뢰 도선을 설치하도록 강화됐다. 서해대교는 이전 기준만 지켜졌을 뿐 강화된 기준에 따라 기능을 높이지 않았다.
지금의 표준 적용뿐 아니라 겨울철 낙뢰는 여름철과 비교해 빈도수는 적지만 낙뢰 시 전압과 전류는 수십 배 높아 안전기준 강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겨울철 낙뢰는 건조한 날씨 특성으로 수직뇌로 작용하기 때문에 파괴력은 최대 낙뢰 전류 400KA에 이른다.
정용기 옴니엘피에스 회장은 “겨울철 낙뢰는 여름철에 비해 빈도수는 5%에 불과하지만, 파괴력은 여름철 낙뢰와 비교해 수십 배에 달해 과거 표준규격을 적용한 시설물엔 심각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며 “기후변화로 낙뢰 발생 예측이 어려워짐에 따라 전국 사장교 대상 접지 등 피뢰설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한국도로공사·소방본부 등으로 구성된 충남재난안전대책본부는 서해대교 사고를 낙뢰로 인한 화재 사고로 잠정결론 내렸다. 서해대교는 복구가 완료되는 24일까지 양방향 모두 통제될 예정이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