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몰아치는 한밤중. 산 속에 지친 두 사내가 잠을 이기려 애를 쓴다. 막 곯아떨어지려는 순간 동이 터 오며 햇살이 눈 덮인 산맥을 비춘다. 순간 화면이 정면을 넘어 좌우 옆면으로 벌어진다. 관객 눈앞에 동이 터오는 히말라야의 광활한 풍경이 펼쳐졌다. 해발 8000m 빙벽에서 비박 한 주인공 시야가 곧 관객 시야가 된다.
16일 개봉하는 영화 ‘히말라야’ 한 장면이다. 엄홍길 대장이 휴먼 원정대를 결성해 에베레스트 등정 중 사망한 박무택 대원 등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이 영화는 2시간가량 러닝타임 중 약 30분에 걸친 분량을 스크린X 기법으로 만들었다.
스크린X는 CGV와 카이스트가 같이 개발한 다면상영시스템이다. 기존 영화는 관객 정면에 위치한 스크린에만 영상을 투사한다. 스크린X는 좌우 벽면까지 스크린으로 활용한다.
멀티프로젝터를 이용해 이질감 없이 정면·좌·우 3면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는 것이 핵심 노하우다. 촬영 단계부터 3대 카메라를 위한 전용 시스템, 다면 영상을 단일 디스플레이에서 확인 가능한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하다.
2012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올해 ‘차이나타운’ ‘검은사제’ 등 영화에서 일부 선보였다. 2014년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한 ‘미래성장동력분야 플래그쉽 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개발 과정에서 국내외 126건 특허를 출원해 2015년 12월까지 26개 특허를 획득했다.
히말라야는 스크린X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첫 작품이다. CGV는 16일 개봉일부터 전국 34개 극장에서 히말라야 스크린X 버전을 선보인다. 스크린X 콘텐츠로 최다 개봉관을 확보했다.
스크린X는 아이맥스나 3D와는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아이맥스는 시야를 넘는 압도적 화면으로, 3D는 양쪽 눈 화각 차이를 이용해 입체감을 만든다.
스크린X는 시야 왜곡 없이 관객 주위를 화면으로 감싸 물리적 입체감을 구현한다. 이를 위해 스크린X 상영관은 극장 좌우 벽면을 특수처리해 영상 투사가 쉽도록 만들었다.
최용승 CGV 스크린X 스튜디오 팀장은 “일반 상영관이 때에 따라 입체감을 주는 특수 상영관으로 변하는 것이 콘셉트”라며 “각 상영관별로 최적 상영 조건을 맞춰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스크린X 효과는 근경보다는 원경에서 극대화된다. 히말라야 역시 인물이나 사물을 클로즈업 하는 장면보다는 산맥을 비추는 부감샷이나 1인칭 시점에서 입체감이 제대로 전달된다.
스크린X 기법은 기상현실(VR) 같은 기술과 결합이 가능하다. VR은 전후·좌우·상하를 화면으로 감싸 가상공간을 만든다. 게임, 영상 분야에서 차세대 기술로 각광 받는다.
CGV와 삼성전자는 히말라야 스크린X 분량 중 일부를 골라 약 2분 분량 VR 콘텐츠를 만들었다. 전국 스크린X 상영관에 체험존을 만들어 히말라야 VR콘텐츠를 선보인다.
최병환 넥스트CGV 본부장은 “개인적 체험에 가까운 VR을 공공영역에서 어떻게 결합할지 고민한 결과가 스크린X”라고 강조했다.
CGV는 국내 47개 극장 78개 스크린X 상영관을 운영 중이다. 해외에서는 중국(베이징, 대련, 시안)을 비롯해 미국(LA, 라스베이거스) 등에 마련했다. 이 회사는 2020년까지 세계에서 1000개 이상 스크린X 상영관을 확보할 계획이다.
서석진 미래부 국장(SW 정책관)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VR 관련 시장이 열릴 것”이라며 “100% 국산 기술인 스크린X가 앞으로 제작, 촬영, 후처리까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