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가상화폐 ‘비트코인(Bitcoin)’이 기로에 섰다. 비트코인 개발을 주도해온 세계 최정상급 개발자가 비트코인과 결별을 선언했다. 통화량 확대 기술 개발을 둘러싼 내부 갈등 때문이다.
1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영국 개발자 마이크 헌은 최근 블로그 사이트인 ‘미디엄’(Medium)에 “펀더멘털은 무너지고 특정인에 의해 프로젝트가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비트코인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단기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든 장기적으로는 떨어질 것”이라며 “더 이상 비트코인 개발에 참가하지 않겠다. 내가 가진 모든 비트코인을 매각했다”고 덧붙였다.
비트코인은 온라인에서만 쓸 수 있는 가상화폐다. 사실상 실물화폐와 똑같은 역할을 하지만 세금이나 환전 수수료 부담 등이 없어 거래가 확산되고 있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프로그래머가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비트코인 생태계 구축에 힘써온 마이크 헌의 결별선언은 비트코인의 불안한 미래를 잘 보여준다. 그는 2년 전 구글을 떠나 비트코인 개발에 전념했다. 새 비트코인을 창출하고 거래가 이뤄지는 기본 소프트웨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개발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이탈은 비트코인을 둘러싼 커뮤니티 갈등 때문이다. 최근 비트코인 개발 업계는 통화량 증가를 위한 대비책과 관련해 불협화음이 일었다. 마이크 헌은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지난해에는 새로운 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비트코인 XT’(Bitcoin XT)라 불리는 새로운 암호통화를 개발했다. 기존 비트코인의 분기 버전(forked version)으로 트랜잭션을 처리하는 블록 크기를 늘려 비트코인 거래 시간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발표 이후 다른 개발자로부터 강한 비판에 시달렸다. 블록 크기를 늘리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비트코인 XT가 사실상 쿠데타에 불과하고 이런 분열은 비트코인 진영 전체에 좋지 않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헌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극소수 비트코인 채굴자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개발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한 배경에는 이처럼 분기 버전을 둘러싼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비트코인 진영이 코어 버전을 개선할 능력이 없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보인다.
최정상급 비트코인 프로그램 개발자가 비관론을 펴고 업계를 떠남에 따라 비트코인이 막을 내리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비트코인 사망선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비트코인 업계 영향력 있는 인사가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것이 이전과 차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지난해 비트코인은 성장 잠재성을 둘러싼 끊임없는 논란이 있었지만 비트코인 가치는 30% 넘게 뛰었다. 그러나 두 비트코인 간 논쟁이 장기화돼 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지난주에만 20% 떨어진 358달러를 기록했다.
비트코인 관련 스타트업 투자가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형 은행이 관련 업체에 투자하는 대신 자체적으로 기술 개발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뮤추얼펀드나 보험사, 연기금 등이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는 것도 불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