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우리나라 주력 정보통신기술(ICT) 제품 수출이 4개월째 곤두박질쳤다. 연속 하락세와 함께 감소폭이 갈수록 커진다. 고부가가치와 중저가 제품으로 수요가 양극화된 가운데 우리 ICT 제품이 어정쩡한 포지셔닝으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ICT 수출액이 총 118억6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8% 줄었다고 15일 밝혔다. 월 기준으로는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연속 감소세다. ICT 수출이 4개월 연속 줄어든 것은 2012년 6월 이후 3년7개월 만이다. 10월 -1.6%, 11월 -7.0%, 12월 -14.7%에 이어 지난달에는 감소폭이 20%에 바짝 다가섰다.
품목별로는 ICT 수출에서 최대를 차지하는 반도체(45억3000만달러)가 13.9% 줄어들었다. 반도체는 D램 가격 하락과 스마트폰 등 세계 시장 수요 둔화 영향으로 4개월 연속 감소했다.
디스플레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글로벌 수요 정체와 중국업체의 공격적 생산 확대에 따른 단가 하락으로 수출 감소세가 심화됐다. 지난달 디스플레이 수출액은 20억10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30% 이상 급감했다. 월별 수출 감소세는 지난해 8월 이후 6개월 연속 이어졌다.
스마트폰도 화웨이 등 후발업체 공세와 시장 성장률 둔화, 중저가 제품 확산 여파로 감소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달 수출액은 6억80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11.1% 감소했다.
컴퓨터·주변기기와 디지털TV 수출액도 각각 10.1%, 29.1% 줄어들었다.
김정화 산업부 전자부품과장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력 ICT 제품 수출 부진이 지난해 4분기부터 본격화하는 양상”이라면서 “스마트폰 성장세가 정체기로 들어서고 중국과의 가격 경쟁이 심화하면서 수출 부진이 당초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 부진이 저유가와 공급 과잉으로 고전하고 있는 석유·조선·철강에 이어 ICT산업까지 걷잡을수 없이 번지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의 마지막 버팀목인 ICT도 취약성이 드러났다. 통상 상반기에 부진하고 하반기에 회복되는 ICT 수출 ‘상저하고’ 패턴도 무의미해졌다. 우리나라 ICT 수출 경쟁력과 산업에 구조적 위기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반도체는 메모리 단가 하락과 스마트폰 성장세 둔화가 겹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ICT 완제품을 넘어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시스템반도체 시장 진출만이 돌파구다.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은 중국 업체와 기술 및 가격 경쟁에서 힘에 부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디스플레이 수출이 최근 1년 가운데 10개월이나 감소한 것은 공급 과잉에 근본적 대처가 시급하다는 신호다. 스마트폰은 수요 양극화에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함으로써 위기를 맞았다.
정부도 이 같은 산업 펀드멘탈 변화에 주목했다. 이인호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수출 부진을 초래한 가장 큰 요인인 유가 하락 외에 ICT와 자동차를 포함한 주력 품목 수출 경쟁력 약화 영향도 있을 것”이라면서 “주력 품목 수출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별도 보완책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ICT를 포함한 주력 산업 고부가가치화와 수출 경쟁력 회복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에너지, ICT 융합, 바이오, 신소재 등 신산업 육성도 필요하지만 주력 산업의 경쟁력 회복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수요가 프리미엄과 중저가 제품으로 양극화가 두드러지면서 우리나라 주력 ICT 수출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잃고 헤매는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주력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ICT 월별 수출액 및 증감률 추이(단위:억달러,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주요 ICT 품목 월별 수출 증감률 추이(단위:%)(자료:산업통상자원부)>
양종석 산업경제(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