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장비업계가 FAT(Final Acceptance Test 최종승인시험) 제도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대규모 장비사업을 수주해도 FAT를 내세워 최대 2년 이상 사업대금 10%를 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은 이를 관행으로 내세우지만 매출 10%를 유예하면 영업이익을 내기 힘들다. 현금흐름 악화는 필연이다.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기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중국에서 대규모 장비발주 사업을 수주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업계의 근심이 짙다. 현지 수주금액이 커질수록 발주 사업 금액 10%를 나중에 돌려받는 현지 계약 관행 때문이다.
FAT는 중국 디스플레이 패널 기업이 장비사업 발주 때 이용하는 제도다. 장비기업이 사업을 수주해 제품을 납품하면 패널 기업이 대금을 지급하는데 전체 사업 10%에 해당하는 잔액은 나중에 지불한다. 장비가 실제 생산라인에서 문제없이 가동하는지 성능을 평가해 최종 합격해야 잔액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장비 기업은 잔금을 지급받는 시기가 발주 기업·사업별로 들쭉날쭉하고 FAT 명목으로 책정하는 10%가 지나치게 크다고 하소연한다. 장비사업 특성 상 발주사업 10%면 최대 영업이익 규모다. 이를 제때 받지 못하니 제품을 공급해도 이익이 없다. 제품 수출을 계속할수록 현금흐름이 나빠진다.
잔금을 돌려받는 시기도 문제다. 중국 패널 기업은 장비를 받은 뒤 최소 1년 동안 성능을 시험한다. 1년 6개월에서 2년 이상 시험기간을 두는 기업도 있다. 표준 기간이 없으니 국내 장비기업은 사업별, 발주처별로 잔금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 중소·중견기업이 대부분인 국내 장비업계 특성상 개별 기업이 일일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상 잔금을 받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많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 장비기업은 중국에서 60억원에 이르는 잔금을 결국 받지 못해 부도 처리된 것”이라면서 “이 정도면 1년 전체 영업이익에 해당하는데 이를 받아낼 방법이 없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장비기업 한 임원은 “발주처에 대금 입금을 요구해도 이를 기피하며 미루는 경향이 많다”면서 “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텼지만 현지 사업이 커지고 공급하는 장비대수가 늘면서 받지 못한 대금이 누적되니 한계에 달했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표준계약 약관을 마련하거나 잔금 비중을 조정·축소하는 등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잔금 비중을 10%보다 낮게 책정하거나 사업대금의 80%만 우선 지급하고 성능시험 중간 단계에 10%를 선지급하는 등 지급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으로 이를 대체하는 방식도 검토해 볼 만하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