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같은 길을 지나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어느 새 길가에 꽃을 봤는지, 하늘을 쳐다봤는지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감성을 한 가득 담은 시를 썼다.
김광경 이에스레즈 사장은 주병권 시인과 20년 지기다. 주 시인은 전자업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명망 있는 고대 공대 교수다. 1989년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에서 교육과정을 함께 듣고 이제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가 된 그가 반도체 전문 서적이 아닌 ‘시집’을 냈다.
김 사장은 “의리 반, 호기심 반으로 시집을 샀다. 그리고 꼼꼼히 몇 번을 읽었다. 비슷한 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시라 더욱 공감이 갔다”고 말했다.
어떤 시에서는 김 사장과 다른 것을 보고 느끼고 있었던 주 시인 감성에 무릎을 쳤다. 이 시집을 대표하는 시이자, 제목 ‘강과 구름과 바람과 시간’에는 주 시인의 인생관이 담겼다. 강을 보고 삶을 되돌아보고 떠도는 구름을 보고 꿈을 꾼다. 바람을 느끼고 시간에 의지하며 사연들을 회고한다.
어떤 시를 읽고는 속된 말로 ‘빵’ 터지기도 했다. ‘오류’라는 시다. ‘울 밑에 서야 할 봉선화가/ 찻 길 옆에 섰고/ 글쟁이가 되어야 할 사내가/ 공돌이가 되었다.’ 그는 “이 짧은 시에서 인생이 느껴진다고 할까. 인생은 오류의 반복이 아니겠는가”라고 풀어냈다.
김 사장은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한다. 그의 삶에 있어 책은 인생 지침서였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의 열풍’이라는 책은 대학 시절 이정표를 제시해줬다. 1987년인지 1988년인지 청주 헌책방에서 구입했던 이 책은 반도체 엔지니어가 아니라 해도 반도체 산업을 통해 사업 기회가 많이 생길 것이라는 확신을 줬다. 이 책을 읽곤 도서관에 가서 몇 년 치 전자신문 기사를 다 찾아 읽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을 찾아가 책을 빌렸다. 이런 대학생이 신기했는지 주 위원은 흔쾌히 허락했다. 당시 책과 신문기사를 요약해 학보에 기고하면서 반도체 비즈니스맨 길에 접어들었다.
1989년에 나온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라는 책은 그에게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이끌어줬다. 도전하지 않는 자는 실패하지 않지만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된 계기다. 이 책을 읽고 그는 1994년 서른 한살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중국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지하 단칸방에 사무실을 얻고 ‘레이닉스’를 창업했다. 당시 중국 유학에서 배운 중국어는 사업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 레이닉스에서 우역교역을 시작으로 대만 LED 무역을 하게 됐으며, 대만 에버라이트 대리점도 맡게 됐다. 당시 에버라이트 자회사였던 에피스타와 만나게 됐고 이후 공동 투자 형식으로 이에스레즈를 창업했다. 직원 60명 정도였던 에피스타는 LED 시장 성장과 함께 이제는 매출 1조원 대기업이 됐다. LED에 일찌감치 발을 디뎠던 김 사장은 국내 LED 시장의 흥망성쇄를 모두 지켜봤다. LED 시장은 침체기지만 김 사장은 다시 한번 책이 가르쳐 줬던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 조명용 LED에 이어 식물생장용 LED 사업에 발을 디뎠다. 늘 그렇듯 김 사장은 책에서 해답을 찾아갈 것이다.
문보경 자동차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