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취임한 것 같은 데 벌써 100일이 됐네요. 취임 3개월 내에 제출해야 하는 경영계획서도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냈습니다. 조직개편도 끝냈고 이제 차분히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풀어갈 준비는 된 것 같습니다.”
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이 23일로 취임 100일을 맞아 내놓은 소감이다.
ETRI는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이 원장에게는 지난 4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40년을 준비할, 역사에 남을 기회를 잡은 셈이다.
테스크포스(TF)팀을 가동해 `새로운 ETRI`를 만들 아이템 38개를 발굴했다. 세부적으로는 97개나 된다. 그 속에는 알파고 같은 임팩트있는 과제를 발굴하기 위한 방법론도 있고, ETRI 비전을 실현할 전략 프로그램도 있다.
이 원장은 향후 비전을 만들어갈 슬로건으로 `Young Forty, Let`s Move`를 제시했다. 활발한 움직임을 함께 해나가자는 것이다. ETRI가 우리나라 ICT R&D 허브로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역할을 해나갈 것인지 자세히 들어봤다.
-최근 조직개편을 마무리했다. 어떻게 끌어 갈 것인가.
▲고유한 ETRI 임무와 사회적 요구 기반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미래전략연구소를 만들어 사업기획, 연구기획 및 전략과 미래기술 기획을 강화하고자 했다.
정책 및 기술예측 기능과 사업기획 및 자원배분 기능을 통합해 향후 먹거리를 만들어 갈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정부 R&D 혁신방안에 따른 중소기업 지원강화도 염두에 뒀다.
조직이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전략부 산하에 변화소통실을 만들었다.
비전은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ICT 이노베이터`다. 목표는 새로운 ICT 패러다임 선도를 위한 핵심원천기술 확보와 강견기업 육성 지원, 도약·합리·열린경영 실현으로 정했다.
국민 속에, 국민과 함께하는 `국민연구소`를 지향한다. 국민에게 사랑받고 관심받는 연구소로 거듭날 것이다. 지켜봐 달라.
-창립 40주년이 됐다. 새로운 40년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임기 내 추진할 역점사업은 무엇인가.
▲국민안전, 국가안보, 재난대비 등을 고려한 국가·사회적 현안 해결 등에 ETRI 연구 방향성이 있다. 이를 공유하는 연구개발을 해나갈 것이다.
사회 약자를 배려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초석이 될 것이다.
초연결, 초지능이 창출하는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원천기술 확보도 ETRI가 가야 할 새로운 도전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ETRI를 활짝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방향성 정립이 중요하다고 본다. 상시 토론하고 세미나와 발표회가 열리는 연구소로 꾸려 갈 것이다. 수많은 전문 그룹 탄생과 활성화를 통해 소통하는 ETRI를 만들어 갈 것이다.
-올해 ETRI가 중점 추진하는 R&D는 무엇이 있나.
▲5G 이동통신 서비스와 테라급 프로그래머블 고신뢰 스마트 인프라, 인간과 기계 간 지식소통을 위한 언어지능 SW, 고현장감 UHD 및 몰입형 미디어 서비스 등이 있다.
5G는 개인별 기가급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동통신 기술이다. 테라급 인프라는 사람, 사물, 빅데이터 등이 끊김 없이 네트워크에 연결(Hyper-connectivity)돼 새로운 비즈니스가 지능적으로 생성·재구성(Smart)되는 기술을 말한다. 전 국민이 사이버공격 및 침해로부터 보다 안전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테라급 인프라 기술이다.
언어지능 SW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연어 질의응답, 다국어 자동통역 및 대화형 외국어학습 등 언어를 이해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인간모사형 언어지능 원천기술을 말한다.
고현장감 UHD 관련기술은 현재 UHD 서비스 대비 2배 이상 밝기, 색범위, 시야각과 실측 3D 기반 가상공간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지난해 자율주행차가 관심을 받았다. ETRI 연구계획과 방향은.
▲현재 ICT와 자동차를 접목하고 클라우드와 연계한 자율주행자동차 SW, 통신 및 보안 기술, 고성능 컴퓨팅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대중교통 취약지역에서 고령자나 교통약자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근거리 이동 시스템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ETRI는 향후 자율주행 자동차 관련 원천 기술 개발을 통해 자동운전 능력을 인간수준까지 고도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자율주행 인공지능 기술은 오는 2025년께면 상용화가 가시화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가 되어도 자동운전 수준은 완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탑승자가 멀미를 느낀다거나, 인간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비해 답답한 느낌을 받는 등 다소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치 못한 상황을 만날 경우 때로는 자동운전에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인간처럼 인지하고 자율주행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이런 이유로 인해 2030년 이후나 돼야 가능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ETRI는 이에 대비해 2025년까지 자율주행 인공지능 선행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아울러 2030년까지 상용화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선보인다는 목표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도 자율주행차 기술 4단계 완성(완전자율주행) 시점을 오는 2040년으로 예고한바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 바둑대결이 최근 큰 관심을 끌었다. SW R&D 계획에 대해 설명해달라.
▲인공지능 분야는 기술에 따라 다르지만, 2~5년 격차가 있다고 본다.
연구성과는 `엑소 브레인` 과제를 통해 곧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인공지능이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를 토대로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을 연결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대량으로 모아 결국은 인공지능이 분석하고 해석하는 초지능사회로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은 4차산업 주요 동력원으로 부상했다. 홀로그램이나 가상현실(VR)을 통해 초실감화로 진화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방향성은 지능 있는 인프라로 연결된다.
ETRI는 선진국에 비해 인공지능 분야에 좀 늦게 뛰어들었다. 선진국과 격차는 있지만, 인공지능 범위가 워낙 넓기 때문에 자동통역처럼 앞서가는 분야도 분명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IBM 왓슨과 같은 퀴즈왕 프로그램에 ETRI도 도전 중이다. 시각지능 SW 연구도 한창이다. 꾸준히 연구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10년 내 주목받을 3대 기술을 꼽는다면.
▲주목해야 할 미래 기술을 꼽기란 사실 매우 어렵다. ICT 변화속도가 엄청 빠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나 전시회에서 화두가 된 것이 웨어러블과 커넥티드카였다.
올해는 모바일로 옮겨지고 있다고 본다. 연초 개최된 CES에서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부각됐다.
ICT분야는 다른 학문보다 발전 및 진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잠시 손을 놓기라도 하면 따라가기가 그만큼 어렵고, 예측도 쉽지 않다.
올해 다포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잡은 건 전체적인 판단이 옳은 듯 하다. 벌써 사물인터넷(IoT)의 상용화로 빅데이터 활용이 논의되고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공지능(AI)이 국민들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세상에 보여 지는 것들이 바로 VR와 사이버물리시스템(CPS) 등이 아닌가 한다.
향후 몇 년간은 이런 주제가 주목해야할 기술로 보여진다.
좀 더 덧붙이면 최근 노벨상 수상자나 세계적 연구그룹들이 `2차원 나노물질`에 주목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이황화몰리브덴, 흑린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핀 분야는 201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내면서 널리 알려져 `꿈의 신소재`로 각광 받았지만 아직 상업적 성공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심지어 흑연 덩어리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는 것이 전부라는 혹평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2차원 나노물질이 언제가 인공지능처럼 기술적 성과를 한 단계 한 단계 진행하면서 각광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
-ETRI나 출연연구기관이 가야할 방향은 어디라고 보나.
▲정부출연연구원은 대기업이나 대학 등이 하지 못하는 연구에도 힘써야 한다.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 의미다. 사회 약자를 위해 ICT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ICT 평가 시스템은 실제적 측면보다는 희망을 주고 감성을 주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본다.
최근 감동받은 동영상이 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로 한쪽 다리를 잃은 무용수 아드리안 하슬렛 데이비스 얘기다. MIT 생체공학자인 휴 헤어교수가 개발한 생체공학 의족 덕분에 다시 춤을 출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다.
사회 약자를 위한 가슴 뭉클한 기술이 바로 공공부문 출연연이 해야 할 기술 아닌가 한다.
공공부문에서 출연연이 서로 보듬어 주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엔지니어로서도 보람된 일일 것이다.
창업에서도 마찬가지다. ICT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역할도 있다. 연구개발품을 오픈소스로 가능한 플랫폼으로 연결시켜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클라우드 시스템처럼 연결하게 되면 설계하는데 드는 비용이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플랫폼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으로 바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TRI가 꼽은 올해 스타트업
ETRI는 기술사업화 활성화를 위해 연구원 또는 외부전문가가 창업준비를 지원하는 `예비창업지원제`를 도입하고, 창업공작소를 운영해 왔다.
지난 3월까지 5년간 제도를 통해 총 34개 기업이 창업했다.
올해 주목할 기업으로 가치소프트, 옵텔라, 라인웍스 3개 기업을 꼽았다.
가치소프트는 국내 우편자동화를 선도하는 기업이다. 2012년 설립됐다. 2014년 매출은 6억원이었으나 지난해 말 기준 13억원을 넘어서는 등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글 주소 인식분야에서 독보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 시장 진입속도가 빠르다는 평가다.
옵텔라는 설립한 지 1년 됐다. 광송수신모듈 글로벌 강소기업이 목표다.
ETRI 기술출자 연구소기업이다. ETRI에서 근무하던 연구인력이 공동창업했다.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 등도 참여한 게 특징이다.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엔젤과 벤처캐피털로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라인웍스는 빅데이터 분야 선도기업이다. 설립한지 2년 됐다. 의료분야 빅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료정보 등 데이터 분석역량을 앞세워 최근 대형 제약사로부터 투자유치를 이끌어 냈다.
ETRI가 운영해온 창업공작소는 3D프린터, 오프소스 하드웨어를 제공하는 창업 및 기업지원 혁신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3년 12월 대전창업공작소와 2014년 10월 서울창업공작소를 개소해 창업 지원 8건, 시제품 제작 460건, ICT DIY 기술교육 700여명을 실시했다.
지난해 메이커 문화 확산 근간이 될 수 있는 중학교 자유학기제 지원을 위해 대전 글꽃 중학교 등 5개 학교에 3D프린팅을 활용한 창의 체험교육에 나서기도 했다.
중소기업 사업화 지원 사례로는 스마트 교육 시스템 전문회사인 욱성미디어가 시제품 제작지원을 받아 지난해 매출 2억원을 올렸다. 올해는 15억원이 예상된다.
◆이상훈 ETRI원장 프로필
1978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석사와 박사학위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시스템 공학으로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1984년 9월부터 1991년 1월까지 미국 벨 통신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귀국 뒤 KT에 입사해 2013년 3월 퇴직할 때까지 22년간 `KT맨`으로 인생을 바쳤다. KT 통신망 연구소장, 연구개발 본부장, 기간망본부장, 비즈니스마켓 본부장, 사업개발 부문장(부사장)을 역임했다. 2007년부터 1년간은 연구위원을 맡아 미국 텔코디아 방문 연구원으로 나가 있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KT 글로벌 앤 엔터프라이즈 부문 사장을 맡았다. 퇴직 후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좌교수와 KAIST 경영공학부 초빙교수를 지냈다. 현재 국제전기전자학회(IEEE) 펠로와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TRI 현황
인력 2500명(박사 934명, 석사 837명, 기타 729명)
예산 6300억원(정부수탁 4468억원, 출연금 949억원, 기술료 312억원, 민간수탁 168억원, 기타 403억원)
보유특허 1만3433건(국제특허 6225건)
활용특허(사업화) 비중 55.2%
최근 5년간 기술료 수익 1624억원
대전=박희범 과학기술 전문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