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VAN)대리점 반발과 카드사의 미흡한 가맹점 인프라 준비로 5만원 이하 무서명 거래(NoCVM) 도입이 무기한 연기됐다. 거래를 위한 시스템 준비보다 밴 수수료를 낮추려는 카드사 조급증이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간 미묘한 감정 대립도 무서명 거래 도입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본지 2월 26일자 3면 참조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초 4월부터 시행 예정이던 5만원 이하 무서명 카드거래가 전면 유보됐다.
앞서 여신금융협회와 금융위원회는 5만원 이하 소액거래에 대해 카드사가 가맹점에 통지, 본인확인을 생략할 수 있도록 신용카드 가맹점 표준약관을 개정했다.
하지만 밴 대리점이 협의 없는 일방적인 무서명 거래 도입에 강력 반발했다. 지난 23일 전국 1000여곳 밴 대리점주가 결의대회를 갖고 단체 행동에 돌입했다.
한국조회기협회 관계자는 “카드사 독단으로 무서명 거래가 시행된다면 밴 대리점(가맹점 모집인)은 카드결제 매입 관련 업무를 전면 중단할 것”이라며 “카드 결제 대금 자동이체 업무는 물론 가맹점에 설치된 사인 패드 회수, 각종 가맹점 서비스를 모두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밴 대리점은 생존권 사수를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하는 등 반발로 이어졌다.
안일한 카드사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약관 개정까지 완료했지만 결제 단말기 업그레이드나 시스템 개발 등 준비가 미흡했다.
밴 대리점이 이 작업을 해줘야 하지만 오히려 사인패드 회수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갈등만 증폭됐다. 애초 카드사들은 밴 대리점이 카드 단말기 프로그램을 바꿔주지 않으면 가맹점에 소비자 대신 사인을 하게 해 무서명 거래를 강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결제 대란은 물론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
금융당국도 도입을 유예하고 중재에 나설 방침이다.
무서명 거래 도입에 대한 입장도 금융위와 금감원이 달라 혼란이 가중됐다.
금융위는 무서명 거래 전면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금감원은 정보유출, 거래 장애 등에 대비한 보안 강화를 주장하며 카드사에 시스템 마련을 주문했다.
밴 대리점은 무서명 거래 도입 전 현 승인수수료 매입수수료가 구분돼 있는 밴 수수료 단일 체계 통합을 요청했다.
앞으로도 삼성페이 전표 수거료 문제로 촉발된 카드사와 밴사 간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무서명 거래 도입은 연기됐지만, 금융당국이 어떤 중재안을 내놓을지 지켜봐야 한다.
여신금융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비대면 인증 등 새로운 인증방식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전표 수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한 것은 맞다”며 “정률제 전환, 밴 수수료 체계 변경 등도 양측 협의를 통해 해결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