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슈퍼컴 성능·규모만 키워선 의미가 없다

정부가 슈퍼컴 독자 모델 확보 전략을 바꿨다. 그동안 연산처리 능력·속도 같은 기본 성능 강화에 집중해오던 것을 핵심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HW)까지 독자 개발 범위를 넓힌다. 2020년까지 500억원 예산이 투입된다.

슈퍼컴처럼 `세계 몇 번째 보유국` `세계 몇 번째 성능` 같은 순위 매기기가 횡행하는 기기도 없을 것이다. 우리도 걸핏하면 이런 순위를 인용해 우리나라 슈퍼컴 역량을 부풀려왔다. 그러다가 정부가 바뀌고 국정감사를 받을 때마다 말썽이 되곤 했던 것이 바로 슈퍼컴이다.

수백억원짜리 외산 제품을 포장째 들여와 쓰면서 국민한테는 개념조차 가늠하기 힘든 페타플롭스(1초당 1000조번 연산처리)니, 컴퓨터 수천대 성능이니 하는 말로 현혹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알파고 사태가 아니었다면 이 조차 쉽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제 연산처리·데이터 저장 능력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같은 개념에서 양적·수적 팽창만 놓고 본다면 경쟁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더해 질적 전환을 누가 먼저 만들어내느냐가 결국 경쟁의 종점인 것이다.

슈퍼컴퓨터도 성능·규모 확대와 그 순위는 무의미해졌다. 그것 자체보다 오히려 연산능력을 극대화하는 SW나 연결성 또는 확장성을 높이는 SW 등 활용에 필요한 애플리케이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아가 그에 맞는 HW까지 독자기술이 확보된다면 더없이 유용한 일일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이전과는 다른 정책적 접근을 해주기 바란다. 슈퍼컴이 왜 개발되고 확보돼야하는지 당위를 먼저 설명하려 하지 말고, 어디에 쓸 것이며 우리 기술로 어디까지 독자화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결정해야 한다.

쓸 목적이 분명해지고, 용도가 정해지면 거기에 맞는 SW·HW 디자인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예산으로 슈퍼컴만 한대 더 늘어나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