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예산 편성 작업이 시작됐다. 박근혜정부 마지막 해의 씀씀이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국가채무 급증으로 재정건전성 우려가 크지만 정부는 `절감`보다 `효율화`에 초점을 맞췄다. 지출 규모 자체를 줄이기보다 허투루 쓰이는 예산을 없애 꼭 필요한 분야에 재투입한다는 목표다.
성공적 구조조정과 실효성 있는 성장동력 확충, 일자리 창출이 해결 과제로 남았다. 계속 늘어나는 `묵직한 빚`은 차기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예산 규모 확대 불가피…`효율화`에 초점
각 부처와 지자체, 공공 부문이 내년도 예산안 편성 때 가이드라인으로 삼는 `2017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에는 기획재정부의 고민이 그대로 반영됐다. 재정건전성을 지나치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 걱정을 덜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재부는 내년에도 예산 규모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기재부가 발표한 `2015~201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 386조7000억원인 재정지출은 2017년 396조7000억원, 2018년 406조2000억원, 2019년 416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확한 내년 예산안 규모는 9월이 돼야 확정되지만 390조원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예산 규모를 줄이기는 어렵지만 효율화는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이번 예산안 지침에서 밝힌 부처별 재량지출 10% 구조조정, 유사·중복사업 통폐합, 100억원 이상 신규 보조사업 적격성 사전 심사 목적은 하나같이 `효율화`다.
기재부가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부처별 재량지출 10% 구조조정이다. 재량지출은 의무지출과 달리 상황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예산이다. 올해 기준 재량지출은 203조3000억원(비중 52.6%)으로 의무지출(183조4000억원, 비중 47.4%)보다 많다.
기재부는 재량지출 중 인건비, 기본경비를 제외한 168조원 중 경직적 성격 사업비를 제외해야 구조조정 금액이 정확히 산출된다고 설명했다. 단순 계산으로 약 16조원을 일자리, 신사업에 투입할 수 있다.
박춘섭 기재부 예산실장은 “예산 규모는 기본적으로 해가 갈수록 늘게 돼 있다”며 “수출 지원, 성장동력 확충과 같은 사업의 지출 수요 충당이 어려워 지출 내역을 바꿔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가 기대하는 효과는 올해 최대 화두인 청년·여성 일자리 해결과 획기적인 신사업 지원이다. 예년처럼 `모호한 수준`이 아닌 전폭적 예산 투입으로 특정 신사업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드론·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CT), 바이오 분야 수혜가 기대된다.
◇효과는 `갸우뚱`…빚 부담에도 `허덕`
문제는 구조조정과 예산 재투입이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느냐다. 기재부는 10% 구조조정을 각 부처 자율로 맡겼다. 절감 재원을 투입하는 일자리, 신사업도 부처가 스스로 결정해 예산요구서를 기재부에 제출한다. 이후 기재부가 평가하는 형태다.
각 부처의 아전인수격 해석이 우려된다. 10%라는 수치를 맞추기 위한 형식적 구조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일자리, 신사업(지침 표현상 `성장 잠재력 확충`)의 모호한 개념을 이용해 부처들이 `무늬만 다른` 혹은 `오랫동안 숙제로 남아 있던` 분야에 예산을 재투입할 우려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 부처가 10% 절감 재원을 실제로는 숙원사업에 투입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에 성공해 신사업, 일자리에 투입할 예산이 마련돼도 기재부가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예컨대 최근 드론 산업이 각광을 받는다는 이유로 국토교통부가 한 분야에만 예산을 몰아주기는 어렵다. 다른 산업 반대가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절감 재원을 여러 분야에 적절히 `나눠 주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일자리 부문은 `예산 투입`보다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돈을 투입해 단기적 고용 성과를 내는데 집중하기보다 구조 개선으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 일자리 정책은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기보다 고기를 잡아주는데 집중됐다”며 “앞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에도 지출 규모를 확대하며 빚 부담도 계속 커지게 됐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연말 국가채무는 644조9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595조1000억원)보다 1년 만에 49조8000억원 늘어나는 것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처음으로 40%를 넘게 된다. 지금 속도라면 국가채무는 내년 70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국가채무 `규모`보다 `증가 속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정부 재정구조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1997~2015년 우리나라 명목 GDP는 연평균 3.2배 증가했지만 국가채무는 9.5배 늘었다. 국민에게 세금을 거둬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 비중도 2005년 41.2%에서 2011년 50.5%로 늘었다. 올해 57~58%로 높아질 전망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채무는 차기 정부에 큰 부담이 된다. 정부는 재정확장 정책으로 경기가 살아나면 세수가 늘어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기대만큼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정부도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지만 경기 회복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긴축이 아닌 구조조정을 통한 재원 재투입이라는 고육책을 내놨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재정전략협의회에서 “바로 지금부터 재정개혁 강도를 높여야 한다”며 “강도 높은 개혁으로 미래를 위한 대수술을 단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