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정보기술(IT) 분야 분쟁이 증가 추세에 있다.
IT 전문변호사 구태언 테크앤로 법률사무소 대표를 3월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일광빌딩 신관 17층 법률사무소에서 만났다. IT 분야 분쟁 시 대응책을 듣기 위해서다.
구 변호사는 노트북을 앞에 놓고 인터뷰에 응했다. 취재 노트를 사용하는 아날로그 기자와 처지가 뒤바뀐 느낌이 들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에서 검사로 일하면서 `IT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검찰에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도입한 주역이다. 11년 검사직을 마감하고 로펌에서 일하다가 2012년 법률사무소를 설립, IT 전문변호사와 지적재산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는 한 시간여 진행했다.
-인공지능(AI) 로봇이 변호사나 판사 업무를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머지않아 AI 로봇이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한다. 로봇 변호사가 등장하면 기존 변호사 업계는 타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판사나 검사는 변호사 업무와 본질이 다르다. 판·검사는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런 일을 로봇에게 맡길 수가 없다. 이에 따라서 판·검사 업무를 AI 로봇이 대체하기는 어렵다. 판사를 돕는 재판연구원 역할은 로봇이 수행할 것으로 본다.
-IT 기업 간 분쟁 추이는.
▲첨단 사업체가 늘고 다양한 신제품과 기술이 등장하면서 그만큼 분쟁도 늘고 있는 추세다.
-분쟁이 가장 많은 분야는.
▲특허침해 분쟁이 가장 많다. 삼성전자와 애플 특허침해 분쟁이 대표적이다. 현재 4년째 법적 다툼이 지속되고 있다. 지급결제 관련 분쟁도 많다.
-한국에 IT 전문변호사는 몇 명인가.
▲전문변호사는 자격 기준이 있다. 관련 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현재 대한변호사협회가 인정한 IT 전문변호사는 12명이다. 서울에 11명이 있고, 한 명은 부산에 있다.
-특허 소송 건수와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되나.
▲2015년 한국에서 250건의 특허 소송이 발생했다. 소송 피해는 5000억원, 분쟁 피해 규모는 7조5000억원에 달했다. 미국에서는 2015년 3500건의 소송이 벌어졌다. 소송 피해 규모는 7조원, 분쟁 피해 규모는 105조원에 달했다.
-최근 기억에 남은 소송은.
▲영국 게임사인 킹닷컴리미티드와 한국 아보카드엔터테인먼트 간 소송이다. 2014년 9월 킹닷컴이 아보카드사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배상액이 11억원이다. 아직 진행 중이다. 2015년 10월 1심에서 저작권법은 승소하고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은 패소했다.
-특허소송이 제기되면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
▲2~3년 걸릴 수도 있다. 비용은 내용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점은 소송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IT와 비IT 기업 간 분쟁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제도를 이용하는 게 좋다. 중재(仲裁)는 소송을 대체한 합의 제도다. 특히 중소기업은 중재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합의를 하면 2~3년 걸리는 소송과 달리 6개월 이내에 끝난다. 삼성과 애플은 4년째 소송 중이다. 소송비용만 35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거듭 말하지만 중재제도를 이용하면 소송비용도 적게 들고 기간도 단축, 일거양득(一擧兩得)이다.
-중소기업이 창업 또는 기업 간 거래 계약서 작성 시 주의할 점은.
▲계약서를 잘못 작성하면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계약서 작성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때 중재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하면 소송을 하지 않고 단기간에 분쟁을 끝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몰라서 계약서에 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분쟁 소지를 없애기 위한 방안은.
▲다소 비용 부담이 있지만 분쟁 소지를 없애려면 계약 단계부터 그 분야의 전문 변호사에게 자문하는 게 좋다. 창업 이후에도 법적 분쟁 여지는 많다. 가능하다면 고문 변호사를 두는 것도 바람직하다.
-소송 당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소송 당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냉정하게 그 분야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해야 한다. 법적 소송은 전문가 영역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아프면 전문의를 찾아가지 않나. 마찬가지다. 변호사가 많지만 그 분야 전문가를 찾아가야 한다. IT 분야는 변호사가 기술과 법률 지식이 해박해야 한다.
-특허 소송을 막기 위한 대비책은.
▲기업이 가진 아이디어는 특허로 등록해야 한다. 그게 기업 보호막이다. 특허 소송 시 상대 기업과 특허 상호사용 계약을 맺으면 분쟁을 해결할 수도 있다. 국내 대기업 간 또는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 간 특허 소송 시 상호 사용 계약을 맺은 사례가 적지 않다.
-무료변론도 하나.
▲그동안 공직자로서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이제 사회에 환원하려고 한다. 현재 스타트얼라이언스에서 무료변론을 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용 상담 창구가 있다. 내용을 입력하면 상담해 준다. 지금까지 1년 6개월 동안 80여건을 상담하고 변론했다. 한국장학재단 멘토링과 한국핀테크포럼 법원지원, 중소기업 법률지원단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 규제는 타당하다고 보는가.
▲지금 시대는 온·오프라인연계(O2O) 환경으로 변했다. 쿠팡의 로켓배송으로 배송 시장 판도가 확 변했다. 지금은 구시대 산업 엘리트와 투쟁 상태에 있다. 각종 규제는 기존 산업 기준으로 만들었다. 필연으로 신산업이나 융합산업과 충돌한다. 우버 사례를 보라. 기존 규제는 전통산업 위주로 수직적인 게 많다. 이제 규제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 손봐야 할 게 많다. 오프라인 위주 규제를 정리해야 한다.
-최근 더 벤처스 사태를 알고 있나
▲안타까운 일이다. 기준을 벗어났는지 적법성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것이다. 다만 정부 정책에 적극 참여한 기업인이 억울함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팁스 프로그램이 획기적이지만 세금으로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일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민간 자본이 자체 판단으로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AI시대 빅데이터 활용에서 법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개인정보에 대해 동의를 받아야 한다. 말은 쉽지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현재의 개인정보 정의를 축소해야 한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지금은 기술 시대다. 첨단기술을 가진 국가가 승자다. 아날로그 시대에 만든 법률은 디지털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 고치지 않으면 새로운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마치 청나라 시대에 여성의 발을 천으로 동여매고 성장을 멈추게 한 전족(纏足) 풍습과 같다.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IT 전문변호사를 선택했나.
▲어릴 적부터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았다. 취미도 전자회로 조립이어서 중학생 때부터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를 누비고 다녔다. 1982년 당시는 PC도 없던 시절이어서 전자부품을 구입, 전자기기를 만들었다. 베이식과 포트란 같은 컴퓨터 언어도 공부했다. 대학도 전자공학과를 희망했다. 하지만 아버님이 기술 분야보다는 공직자가 되길 희망해 법대로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 검사로 일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와 첨단범죄수사부에서 일했다. 당시 초대 부장이 정진섭 검사(현 변호사), 다음 부장이 황교안 현 국무총리였다. 황 부장은 6개월 후에 다른 부서로 갔다. 당시 인터넷과 정보보호침해 범죄 수사를 하면서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배우며 도입했다. 그 뒤 대검찰청에 디지털포렌식센터를 설치했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나눔과 봉사 실천`이다. 검사라는 일 자체는 힘들었지만 국가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 이제 나누고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리어답터로서 신기술이나 신제품에 관심이 많다. 귀가 시간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새벽에 들어가는 일도 허다하다. 나눔과 봉사의 일환으로 IT 전문변호사를 양성하고 싶다.
구 변호사는 1991년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대학원에서 국제법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사법시험 34회에 합격,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 수사부 검사로 일하면서 검찰 내 `IT전문가`로 명성을 얻었다. 11년 동안 검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로서 정보보호 사건을 담당했다. 2012년에는 테크앤로 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법조계 인사로는 유일하게 2012년, 2013년 연이어 정보보호대상과 개인정보보호대상을 수상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과 특허청 산업재산권 법제위원, 금융위원회 법령해석심의위원,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 특허청 산업재산권 분쟁조정위원, 행정자치부 공공데이터제공분쟁조정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등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핀테크를 잡아라` `판사·검사·변호사가 말하는 법조인` `개인정보보호의 법과 정책` 등 저서를 펴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