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핵심은 실용화, 사업화입니다. 단순히 의사가 논문 몇 개를 발표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 백,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는 실용 기술을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성패를 좌우합니다.”
정명희 가천대 길병원 의생명융합연구원장은 병원 R&D 핵심은 실용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에만 목적을 두고, 실제 환자에 적용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R&D 기획 단계부터 사업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정 원장은 “그동안 우리나라 병원 R&D는 논문이 얼마나 나왔는지, 특허가 몇 개인지만 관심을 뒀다”며 “연구중심 병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개발한 기술을 실제 접목하는 실용화, 사업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가천대 길병원 R&D를 총괄하는 의생명융합연구원장에 부임한 그가 가장 역점을 두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개발한 기술을 신뢰성 높은 임상을 통해 검증한다. 결과를 토대로 환자를 살리고 병원을 탄탄하게 만드는 실용화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는 “최근 연구기획단 산하에 있던 기술사업화 조직을 독립 조직(기술사업단)으로 승격했다”며 “R&D 초기단계부터 사업화 가능성인 높은 아이템을 선정, 실용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했다.
가천대 길병원은 지난 2013년 대표 상급종합병원와 함께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됐다. 노인성 뇌질환, 대사성 질환 두 가지 특화영역에 집중해 연구중심병원 중에서도 톱3에 꼽힐 만한 성과를 거뒀다. 한미약품 대사성질환 신약 글로벌 기술이전에 전임상 유효성 평가를 수행했다. 해당 신약 시장 규모만 5조원에 달한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과 뇌질환 조기진단과 치료제 개발 협정도 체결했다.
연간 1000억원 이상 투입해 뇌질환과 대사성 질환 정복을 위한 의료기기, 유전자 분석도 속도를 낸다.
정 원장은 “노인성 뇌 질환을 검사하기 위해 고성능 MRI(자기공명영상)기기가 필수”라며 “일선 병원에서 임상용으로 쓰는 3테슬러(T)를 뛰어넘는 11.7T급 장비 개발을 시도 중”이라고 말했다. 해상도가 높을수록 뇌병변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외산이 장악한 MRI 시장에서 국산화를 시도한다. 나아가 글로벌 고성능 MRI 시장을 선점하는 게 목표다.
이어 그는 “당뇨 정복에 가장 큰 걸림돌은 비만과 인슐린 저항”이라며 “인슐린 저항을 억제하는 2~3개의 선도물질을 발견했다. 이 물질을 활용해 실용화에 성공한다면 당뇨병 분야에 새로운 기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기대했다.
낮은 수가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병원이 R&D를 통한 자생력을 키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가천대 길병원 역시 충실히 이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 연구중심 병원을 이끌 연구전담 의사 확보 문제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도 필요하지만 수천 명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연구개발 전담 의사도 양성해야 한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하나인 의사도 연구능력이 뛰어나다고 보긴 어렵다”며 “의대 졸업 후 R&D에 투입할 수 있는 전문가 과정을 확대 개설해 연구전담 의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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