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어드바이저가 자문 상품 운용에서 나아가 운용 규모가 88조원에 이르는 펀드 랩 시장에 진입했다. 인공지능(AI) 로봇이 직접 수백억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NH투자증권을 시작으로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키움증권 등 주요 증권사가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와 제휴하거나 독자적으로 로보어드바이저 펀드를 운용할 예정이다.
증권사 가운데 가장 먼저 로보어드바이저 펀드 랩 어카운트를 선보인 곳은 NH투자증권이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디셈버앤컴퍼니와 손잡고 펀드 랩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디셈버앤컴퍼니 로보어드바이저 엔진이 매일 세계 금융 상품 가격을 분석, 글로벌 펀드 포트폴리오에 투자한다.
로보어드바이저가 분석한 펀드 포트폴리오에 투자하는 랩은 국내 최초다. 사람이 분석 불가능한 세계 금융 상품 가격 변화를 로보어드바이저 엔진이 분석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 NH투자증권은 디셈버앤컴퍼니 외에도 쿼터백투자자문, AIM, 한국밸류시스템투자자문 등과도 관련 펀드 랩을 순차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신한금융투자도 내달 한국투자자문과 함께 펀드 랩을 출시하는 것을 비롯해 키움증권, 삼성증권 등도 일임형 펀드 랩 어카운트를 내놓을 계획이다.
랩 어카운트는 고객이 목돈을 맡기면 증권사가 자금을 운영하는 맞춤형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다. 펀드가 자산운용사가 만들어 판다면 랩 어카운트는 증권사가 만들어 판매하는 펀드 상품이다.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에 펀드 랩 운용은 새로운 기회다.
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관계자는 “자문사가 일임 자문형 상품으로 계약을 맺으려면 고객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가입해야 했다”면서 “증권사와 랩을 판매함으로써 판매 창구가 확대돼 운용 규모가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랩 어카운트 규모는 수십억원에서 1000억원에 이른다. 로봇이 수백억대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일임형 랩 어카운트 총 평가금액은 지난 1월 말 기준 88조8555억원에 이른다. 고객 수도 129만명이다. 큰 시장이다.
최근 증권사가 로봇 운용 펀드 상품을 내놓는 것은 짧은 기간이지만 로보어드바이저의 안정성이 검증됐음을 의미한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알고리즘이나 운용 방법 등을 살펴본 결과 충분히 안정적 수익을 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저금리기조에서 안정적 수익을 원하는 고객이 많다”면서 “기존의 펀드 대비 수수료가 저렴한 것이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가 사실상 제로금리에 가까운 예금 금리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에 기대감도 커졌다”고 말했다.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다양한 분산 투자를 해 주는 점도 로보어드바이저의 매력이다.
한 증권사 운용랩 팀장은 “투자자가 직접 시장에서 자산을 배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로봇은 여러 변수를 고려해 자산을 배분한다”면서 “로봇은 충분히 이런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자료: 금융투자협회
이경민 코스닥 전문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