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등 부실 업종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개편을 아우르는 `산업 개혁`이 정국 최대 이슈로 부상하면서 개혁 방향 논의가 불붙었다. 4·13 총선 직후 정국 주도권을 잡은 야당이 그동안 금기시했던 구조조정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정부·여당이 화답하면서 산업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대한민국 숙제`가 됐다.
대한민국 재도약 성패는 이번 산업 구조조정에서 판가름 난다. `끝`이 아닌 `다시 시작`이 돼야 한다.
내년 대선 정국 돌입 이전에 구조조정 논의와 실행 전략 마련을 끝내야 한다는 대명제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다.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촉발된 주력 산업 위기를 타개할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지다.
이제 남은 것은 구조조정으로 발생할 대량 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할 실행 전략 마련이다. 현 산업구조 개혁이 `끝을 의미하는 정리` 보다 `혁신을 통한 재정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부실 업종 구조조정 1순위로 해운과 조선 업종을 지목했다. 26일 구조조정협의체 회의에서 이들 2대 업종에 대한 대략적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종 내 개별 업체도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향후 여야정협의체 논의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관건은 설비, 인력 감축으로 발생할 대량 실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급한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재편을 위해서는 구조조정 방안과 업종 효율화, 실업 대책 마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노키아 몰락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해낸 핀란드식 산업 구조조정 모델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2년 핀란드는 자국 국내총생산(GDP) 25%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던 노키아 몰락으로 국가 차원 구조조정이 당면 과제로 부상했다. 2012년 6월에는 본사 직원 중 20%에 달하는 인력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핀란드 정부와 노키아는 경쟁력이 떨어진 휴대폰 제조를 과감히 포기하고 대체 신산업에 눈을 돌렸다. 핀테크와 모바일 게임 등 중소·벤처기업 지원이 이어졌다.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은 과감히 떼어내고 융합형 신산업에서 탈출구를 찾은 셈이다. 이에 따라 노키아를 퇴직한 고급 인력들의 창업이 이어지고 고용 창출 효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은 한 것은 바로 노키아의 `혁신 역량`이다. 세계 휴대폰 산업을 좌지우지하던 노키아 연구개발 역량이 산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력 산업 혁신 역량은 경쟁국에 비해 뒤처진 것이 사실이다. 생사 기로에 선 조선산업만 해도 대기업 연구개발 집중도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매출액 1%도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1999년 조선 대기업 연구개발 집약도는 1.03%에서 2013년 0.93%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연구개발 총액은 증가했지만 매출액 대비 혁신 역량은 뒷걸음친 셈이다.
이에 따라 조선산업 구조조정으로 발생할 대량 감원을 상쇄할 대체 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는 조선산업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주력 산업 연구개발 투자는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산학연 연계를 비롯한 혁신 역량은 경쟁국에 비해 떨어진다. 자동차, 전자 등 전 산업 부문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1, 2차 협력업체 줄도산이 더욱 큰 걱정”이라며 “대부분 기자재 업체로 구성된 조선산업 생태계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업종 내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이 독과점 체제로 개편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사안이다. 조선, 철강 등 우리나라 대부분 주력 산업이 고유 수직계열화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경쟁이 아닌 독점체제로 전환할 경우 연구개발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실업종 구조조정 논의가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폭탄돌리기식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대규모 해고 인력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충과 대체 신산업 육성 방안이 함께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개편을 위한 법·제도는 기촉법과 기활법 등으로 어느 정도 기반이 마련돼 있다”며 “여야정 협의 과정에서 시급한 사안에 강력한 추진 체계를 만들어 힘을 실어주고, 효율적 재원 운용 전략을 마련할 수 있도록 건설적 토론과 지혜가 모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종석 산업경제(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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