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동안 차별 규제로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온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손질한다. 지나친 규제로 인해 벌써 몇 십년째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대기업이 등장하지 않고 있고, 카카오와 같은 신생 기업이 대기업군 반열에 올라섰지만 규제에 발목이 잡혀 성장 활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규제에 부담을 느껴 외형은 대기업군에 속하지만 중견기업으로 남으려고 하는 `피터팬 증후군`까지 없애겠다는 계획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개최한 45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오찬간담회에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면서 “지금 경제 규모도 달라지고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는 시대에 예전 그대로 지정제도를 손도 안 대고 가져가겠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경쟁력을 깎아 먹는 일”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직접 언급한 것으로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대표 사례로 `카카오`를 언급하며 업종과 기업 특성을 고려한 규제 개선 시급성을 강조했다.
카카오는 자산 5조원을 넘어서면서 이달부터 대기업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대기업에 들어서면서 새로 적용받게 된 규제만 70개가 넘는다. 상호출자제한으로 스타트업과의 인수합병(M&A)에도 제약이 생겼고, 국가 발주 소프트웨어(SW) 사업 입찰에도 참가하지 못하게 됐다. 카카오 계열사의 벤처캐피털 투자줄도 막혔다.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핀테크 사업 역시 차질을 빚고 있다. 이는 카카오 외에도 여러 초짜 대기업들이 비슷한 고충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뭘 해 보려고 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아 놓고 경제 활성화가 안 되느니 그러면 안 된다”면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반드시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도 이 같은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재조정에 공감하고 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개선 문제는 충분히 논의한 후 의견 수렴을 거쳐 검토하겠다”면서 “만약 자산총액 기준을 올린다면 공정거래법 시행령만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경우 단기적으로는 올해 새로 대기업집단이 된 기업이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박대통령은 저성장 늪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에 활력을 넣기 위해 산업구조 개혁과 노동개혁 필요성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법 중에 파견법을 자꾸 빼자고 그러는데 파견법이야말로 일석사조쯤 된다”면서 “구조조정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실업자들이 파견법을 통해 빨리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파견법만 통과되면 한 9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며 산업 구조조정을 위해서라도 노동개혁 입법은 필수임을 재차 강조했다.
다음 달 이란 순방 출장 이후 여야 3당 대표들과 이른 시일 안에 회동해 국회와도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나아가 여야 지도부 간 회동을 정례화하고 사안별 여·야·정 협의체를 마련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정이나 국무총리 야당 측 인사 임명에 대해서는 거부의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과 언론사 간담회는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한 이후 잡힌 첫 `소통` 일정이다. 편집·보도국장과의 자유 질문이 길어지면서 당초 1시간 30분가량 예상한 행사는 40분 정도 더 길어졌다. 대통령 모두 발언 이후 자유롭게 식사하면서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이날 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의를 잘 반영해 변화와 개혁을 이끌면서 각계각층과 협력, 그리고 소통을 잘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면서 “언론에서도 정부의 이런 노력에 힘을 보태 주시고, 정부와 국민과의 가교에 좋은 역할을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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