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피털업계가 선점해 온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 은행, 카드, 제2금융까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진입하고 있다. 이미 할부리스사 영업자산 가운데 자동차금융자산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자동차금융은 차량 구매 과정과 분리가 어렵고 완성차 업체의 캡티브(계열사 간 내부시장) 회사 지원 등 고유 특성을 띠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전통 캐피털사가 시장을 독식했지만 수입차 판매 비중이 높아지고 중고차 금융 확대, 할부리스사업 활황으로 금융권 전반이 자동차 할부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여신전문업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정 수준의 재무건전성 요건을 충족하는 저축은행에 할부금융 겸업을 허용했다. 이미 웰컴저축은행 등 4개 저축은행이 할부금융업을 등록하는 등 자동차할부 시장은 뜨거운 격전지로 떠올랐다. 여기에 금융지주 계열사 사이의 위탁업무가 원칙적으로 허용됨에 따라 은행 창구에서 직접 캐피털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소비자에게 캐피털사를 소개한 기존 관행이 깨진 것이다.
은행-캐피털 협업이 보편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은행 계열 캐피털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그동안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을 이끌던 캐피털사는 은행, 카드사, 저축은행 등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자동차 시장, 금융권 금맥으로 떠올라
국내 자동차 내수시장은 2009년 처음으로 100만대를 돌파한 이후 2015년 157만대 규모까지 성장했다. 국산차 등록 대수는 지난해 130만대를 넘어섰다. 수입차는 6년째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준중형 및 중형 수입차 제품군이 확대되고 국산차와 가격 격차가 줄어들면서 구매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각종 금융상품이 발달해 한 번에 목돈이 들지 않고, 이로 인해 20~30대 젊은층의 수입차 구매가 크게 증가한 것 역시 자동차 할부금융시장 활력의 요인이다.
연간 25조원 안팎인 국내 자동차 금융시장은 올해에도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산 신차는 경기 내수 위축에도 저유가, 개별소비세 인하 등으로 내수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수입신차금융 역시 수요 증가 지속으로 올해 10%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되며, 중고차금융시장 저변 확대와 저금리 오토론 상품 활성화로 자동차금융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등록 대수는 지난해 말 기준 2100만대로 전년 대비 87만2000대 늘었다. 이는 2003년 이후 자동차 증가율로는 12년 만에 최고치에 해당한다. 지난해 자동차 등록 대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 데에는 개별소비세 인하와 수입차 선호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 신규 등록은 전년 대비 10만5000대(10.2%) 증가했다. 국산차의 경우 전년 대비 10만5000대 늘어나 7.3% 증가했고, 수입차는 6만5000대 늘어나 29.2% 증가했다.
주변 환경은 성장하고 있지만 주도권을 쥐고 있는 캐피털사의 실적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신규 경쟁자 등장으로 치킨게임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캐피털사 VS 금융사 격전 시작
국산 신차 금융은 약 15조원, 수입 신차 금융은 약 4조원 시장을 각각 형성하고 있다. 아직까지 시장 주도권은 캡티브 캐피털사가 쥐고 있다. 현대차계열 현대캐피탈, 알씨아이파이낸셜서비스 코리아 등이 해당한다.
신차금융시장에서 캡티브사 지위는 확고하다. 판매 채널의 영업 지원을 바탕으로 계열 자동차 회사 할부나 리스판매액 70%를 취급한다. 계열사 자동차 판매가 캡티브사 금융 판매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영업 부담이 크지 않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금융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캡티브사를 위협하는 곳이 등장했다. 한국GM 관련 시장에서 경쟁하는 JB, KB, BNK, 아주캐피탈 등이다. 자동차 판매사와 금융제휴약정을 체결, 할부금융 등을 제공하고 금리 정산을 통해 이자 마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사업 구조다. 하지만 이들 금융사는 계열이 아닌 계약에 의한 협력 관계라는 점에서 캡티브 캐피털사와 차이가 있다.
특히 신차금융시장 내 경쟁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복합할부금융상품 취급 중단으로 현대캐피탈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됐다. 한국GM도 지난해 딜러십을 해지, 직영판매 체제로 전환했다.
신차금융시장과 함께 복합할부금융상품도 등장했다. 2009년 아주캐피탈이 롯데카드와 제휴해 첫선을 보인 후 현대·기아차 금융시장에 대한 논-캡티브사의 주요 공략 수단으로 사용됐다. 복합할부금융상품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게 된 것은 가맹점 수수료의 일부를 신용카드사가 수취하고 나머지를 자동차 구매 고객, 딜러 등에게 배분하는 상품 구조가 판매 동기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반발로 복합할부금융상품 취급이 전면 중단됐고, 카드사는 독립해서 자동차금융 할부 시장에 뛰어들었다.
중고차 금융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신차금융 시장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아 최근에는 신한은행까지 참여하고 있다. 중고차금융 시장에서는 매매단지, 딜러, 제휴점 등 물량을 대는 채널 확보가 중요한데 오랜 기간 중고차금융 시장에 뿌리내린 캐피털사가 다소 안정된 채널을 통해 시장을 선점해 왔다. 하지만 최근 저축은행까지 중고차금융 시장에 뛰어들면서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촉발되고 있다.
◇은행, 자동차금융 진격 앞으로
한국 자동차금융 시장 재편 작업에 가장 먼저 승부수를 띄운 곳은 신한은행이다. 2010년 2월 `신한 My Car 대출`을 선보이고 지난해 10월에는 은행권 최초로 자동차금융 취급액 2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2월 12일에는 은행 방문 없이 모바일로 대출신청부터 실행까지 가능한 자동차 대출 신상품 `Sunny My Car 대출`까지 출시하며 온·오프라인 상품 제품군을 완성했다.
또 서울보증보험 개인금융신용보험을 이용해 낮은 고정금리로 금리 상승의 위험 없이 매월 동일한 금액으로 상환할 수 있도록 상품을 구성했다. 신차 구매 고객은 고정금리 연 5.0%에 최대 1.0%포인트 금리우대를 통해 최저 4.0% 금리로 자동차금융을 이용할 수 있다. 기존의 캐피털사 자동차할부금융보다 저렴하고, 제1금융권 대출이라는 장점도 있다.
`써니마이카 대출`은 출시 2개월 만에 2000건이 넘는 신규 취급 건수와 536억원 취급액(4월말 기준)을 달성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은행도 신차 및 중고차 구입 시 대출 한도는 확대하고 금리는 낮아진 자동차 구입 특화대출 `우리 CAR 행복대출`을 출시했다.
대출 한도를 늘려 신차는 최대 7000만원, 중고차는 최대 6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소득이 적거나 타행에 신용대출이 있어도 최대 35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또 채권 보전을 위해 자동차에 근저당 설정을 하지 않아도 되며, 별도의 취급수수료도 없다.
대출금리는 신용등급 및 연소득에 따라 출시일 현재 최저 연 4.14%(코픽스 6개월 신규 기준)다. 우리신용카드 또는 우리체크카드로 결제하면 대출금의 최대 1.5%까지 캐시백 혜택도 받을 수 있다.
KB국민은행도 와이즈(WISE) 오토론 신차, 중고차 할부금융 상품을 내놓으면서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신차는 자동차 판매가격에서 선수금을 제외한 금액 이내에서 최고 7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