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를 묵묵히 연구하고, 이런 사람이 대우받고, 이게 국가발전 원동력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2일 경기 고양 한국항공대 연구실에서 만난 곽영길 항공전자·정보공학부 교수는 `끈기 있는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 기술자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한 분야에 매진하고 노력해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한 분야를 오래 연구할 풍토가 아닙니다. 연구는 결국 예산과 인력인데, 예산은 단기적일 때가 많고, 석·박사는 졸업을 해버리면 다시 키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곽 교수는 우리나라 레이다 연구 권위자다. 지금까지의 연구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달 21일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진보장을 수상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끈기 있는 연구 끝에 얻은 열매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소에서 레이다 연구를 시작한 건 1976년.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그야말로 `한 우물`을 팠다.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1983년 미국 오하이오대로 유학을 떠났다. 선진기술을 배우고 1987년 귀국한 그는 레이다 개발에 참여해 국산화 열망을 키웠다. 당시만 해도 레이다 기술은 모두 외국 것을 수입해 사용했다.
1990년대 중반 위성 영상레이다(SAR) 국산화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하여 팀을 이끌고 영국까지 날아갔지만 IMF사태 여파로 2000년 사업이 중단되는 아픔을 맛봤다. 그러나 이 도전은 국내 독자적인 SAR 기술기반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그는 2001년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레이다 기술연구를 계속하면서 위성 SAR 기획연구에 참여했다. 2005년 국산 위성 발사 계획이 재수립됐다. 중간에 발사 계획이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2013년 우리나라 최초로 아리랑 5호 SAR 위성 발사가 성공했다. 국내 최초로 영상레이다 기술을 시작한지 17년 만이었다. 그는 “불모지에서 시작한 SAR 레이다 연구가 마침내 국내 독자 연구기반을 구축한 쾌거”라고 평가했다.
국산 위성의 `눈`을 만든 것 외에도 3차원 위상배열 레이다 신호처리기, 스마트 무인기 및 헬기 충돌방지 레이다, 최초로 `고속도로 돌발 상황 노면 장애물 검지 레이다 원천 기술개발 등 30여건의 레이다 신기술을 개발했다. 관련 국내외 논문만 200편이 넘는다. 국제 영상 레이다 학술회의를 국내 최초로 개최했다. 최근에는 SDR 기술을 이용해 드론을 탐지 추적할 수 있는 레이다도 연구 중이다.
40년 인생을 연구소와 대학에서 레이다 연구에 바친 그의 소원 중 하나는 `레이다`라는 용어가 정착되는 것이다. `레이다(RADAR)`가 맞는데 자꾸 `레이더`라고 써서 안타깝다고 했다. 수년 동안 앞장서 레이다 표준어 개정을 추진한 끝에 지난해 외래어 표기법이 바뀌면서 `레이다`가 표준어가 됐다.
“평생을 잘못된 이름표를 달고 일을 한 셈입니다. 표준어가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신문이나 방송에선 `레이더`라고 쓰더군요. 이제는 `레이다`라는 제대로 된 이름표를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