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앨런 튜링은 대화를 통해 인공지능(AI)을 판별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AI와 소통할 때 사람이 컴퓨터인지 알아챌 수 없다면 이미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주장이다. 컴퓨터와 사람을 두고 각각 말을 주고받을 때 대화 참가자 3분의 1이 컴퓨터를 사람처럼 느꼈다면 인공 지능을 갖춘 셈이다. AI 판별 방식으로 유명한 튜링 테스트다.
영화 엑스마키나에서도 튜링 테스트가 등장한다. 기존 방식처럼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 않고 주인공 칼렙만 로봇과 대화를 나누면서 AI 여부를 가린다. 아름다운 여성의 외모를 가진 AI `에이바`는 사람과 같은 말투로 칼렙을 유혹한다. 자신을 창조한 과학자 네이든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칼렙과 네이든, AI 에이바가 펼치는 대화와 행동은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지만 스릴러처럼 긴박하게 돌아간다. `밀당` 하듯 사람을 속이는 에이바의 모습을 보면 섬뜩할 정도다.
에이바는 어떤 원리로 돌아갈까.
에이바를 개발한 네이든은 세계 검색 엔진 시장을 잠식한 블루문의 CEO다. 에이바를 여성형 로봇으로 만들었지만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 속에 들어가 있는 AI 정체는 검색 엔진 `블루문`이다. 스마트폰과 PC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해 검색을 하고 그 결과를 내놓는 알고리즘이 AI 에이바의 정체다. 결국 인간과 인간이 연결된 인터넷 자체가 AI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엑스마키나 속 블루문을 보면 현실의 구글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구글도 세계 검색 엔진 시장 주도권을 잡고 있다. 단순한 검색창 하나의 홈페이지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연결된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이 녹아 있다. 구글도 네이든처럼 딥마인드를 인수하면서 AI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인간을 이긴 바둑 AI 알파고도 탄생시켰다.
엑스마키나를 보면 구글도 에이바 같은 AI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 구글 검색 엔진을 기반으로 세계와 연결된 네트워크, 딥마인드의 AI, 또 2족 보행, 4족 보행 로봇도 만드는 구글을 보면 아름다운 AI 에이바가 태어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그 AI가 사람을 유혹하고 속이며 세상 속으로 나온다면 우리는 그 AI를 분간할 수 있을까.
엑스마키나의 원문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 뜻처럼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의 모습을 할지도 모른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