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과학 핫이슈]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임신한 쥐에게 한 생식독성 실험에서 15마리 중 13마리의 새끼가 죽었다. 가습기 살균제 원인 물질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가 미친 영향이다. 이처럼 독성이 강한 물질을 사람을 상대로 팔았다. 피해자가 약 1300명, 사망자가 200명이 넘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바이오사이드(biocide)로 발생한 세계 첫 피해 사례다. 가습기살균제는 가습기 내 물에 첨가해 미생물 번식과 물 때 발생을 예방할 목적으로 1994년 처음 출시돼 20여종의 제품이 연간 60만여개 팔렸다. 당초 카펫 항균제 등의 용도로 출시된 화학물질(PGH, PHMG 등)이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로 사용됐다. 2009년부터 2011년 가습기살균제 소비가 증가하면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미생물이나 해충을 죽이려고 사용한 제품이 오히려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SK케미칼에서 원료를 공급받거나 외국에서 원료를 수입해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주요 대형 할인점이 만들어 판매했다.

1994년 첫 제품이 나온 뒤 2011년까지 20여종이 시장에 나왔다. 그 사이 800만명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어린이와 임산부를 중심으로 피해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6년 이후에는 피해자가 거의 동시에 4~5명씩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2011년 3월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출산 전후 20∼30대 산모 7명과 40대 남성 1명 등이 원인불명 폐질환으로 입원했다. 산모 4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의료진은 질병관리본부에 이를 신고했다. 질병관리본부는 그 해 8월 산모들의 폐 손상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하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영유아 5명 사망 사례를 발표했다.

폐 손상 원인으로 지목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PHMG, 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 메틸이소치아졸리논(MIT) 등이다. 가습기살균제 주요 화학물질인 PGH, PHMG는 고분자물질, CMIT와 MIT는 혼합물질 형태로 가습기살균제 외에도 포장재, 화장품 등에 항균·방부기능으로 사용됐다.

이들 물질이 고농도로 폐에 노출되면 감기나 폐렴증상이 발생한다. 간질성 폐렴으로 진전돼 폐가 딱딱해져 호흡곤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폐 손상은 회복되지 못하고 고착성 폐 기능 저하로 폐를 이식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폐 세포는 수축과 팽창을 하면서 공기를 혈관에 전달하는데 폐 손상으로 섬유화가 발생하면 딱딱해져서 공기를 혈관에 전달하지 못하고 숨을 쉬지 못하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는 미세한 입자가 폐를 통해 혈관으로 들어가 퍼진 것이다.

PHMG와 PGH는 살균제나 부패방지제 등으로 흔히 사용되는 구아디닌(guanidine) 계열 화학물질이다. 질병관리본부 동물흡입시험보고서에 따르면 PHGM와 PGH는 90일간 반복 흡입 시 저농도 노출에서 폐가 딱딱해지는 폐섬유화 관련 독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국립환경과학원이 GLP시험기관에서 시험한 결과도 유독물 지정기준(LC50, 4시간 1.0mg/ℓ 이하)에 해당하는 흡입독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PHMG는 입으로 한 번 섭취하면 위험 수준이어서 주의가 필요하고 피부에 한 번 접촉할 경우 독성과 자극성이 거의 없지만 안구에 심각한 장애를 줄 수 있다. 피부에 반복 접촉하면 단정적이지는 않으나 알레르기 증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GH는 덴마크에서 아그로셉트(Agrosept)라는 제품으로 발표된 물질 안전자료(MSDS)에 나타난 물리화학적 특성으로 피부와 눈에 접촉해도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생물을 이용한 간이 돌연변이원성 시험 결과가 음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참고가 될 만한 흡입독성 자료는 없고, 이 물질이 중·장기적으로 인체에 노출될 경우 위해성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도 없는 실정이다.

이 물질들이 가습기 살균제로 쓰이고 사람에게 노출돼 사망까지 이르는 사건이 발생한 경우는 국내 사례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환경부는 2012년 9월 PHMG, CMIT, MIT 등을 2013년 8월 PGH를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유독물로 지정했다. 제2의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화학물질 용도 변경 시 보고 및 등록 의무화, 유해화학물질 함유제품 신고 의무화 등 생활화학제품 위해성평가를 강화하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2015년 1월부터 시행했다.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레킷벤키저 뉴가습기당번 외에도 롯데마트, 애경, 이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 세퓨, 아토오가닉, 아토세이프, GS 등 20종에 이른다. 살균제 성분별로 분류하면 PHMG(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 롯데마트 PB, 홈플러스 PB, 코스트코 PB) PGH(세큐, 아토오가닉) CMIT·MIT(애경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PB, GS PB)가 있다.

1997년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는 CMIT·MIT 성분을 주원료로 해 비염이나 기관지염, 편도염 등 폐 질환 외에도 다른 질환을 유발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