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고유 업무로 여겨졌던 송금분야, 그것도 은행이 주도권을 쥔 펌뱅킹 송금 서비스에 카카오가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은행과 카카오 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핀테크 전반 주도권 경쟁으로 확전될 기미도 보인다. 지난달 은행권 텃밭인 송금분야에 카카오가 진입하면서 이를 지키기 위한 은행과 판을 뒤엎기 위한 카카오 간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시작됐다.
현재 `카카오페이 송금` 서비스에 시중은행 16개 중 5개 은행만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전체 3분의 1도 안되는 일부 은행만이 참여하면서 `카카오페이 송금`이 반쪽 서비스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달 28일 `카카오페이 송금` 베타 서비스를 선보였다. 별도 앱을 깔지 않고 카카오톡 대화 중 상대방에게 돈을 보낼 수 있다.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공인인증서, 일회용 비밀번호(OTP), 계좌번호 없이 송금이 가능하다. 편의성도 강화했다. 카카오톡 네 번째 `더보기` 탭 혹은 카카오톡 대화창 왼쪽에 위치한 `+` 버튼을 누른 뒤 `송금` 기능을 선택하면 된다.
이용을 원하는 고객은 은행 계좌를 연결한 후 필요할 때마다 `카카오머니`를 충전해 송금, 결제 서비스를 이용 할 수 있다. 이용 내역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신한은행, SC제일은행, KDB산업은행, 제주은행, 신협 등 5개 금융기관이 참여를 확정했다.
문제는 대부분 시중은행이 `카카오페이 송금` 서비스 참여를 꺼린다는 것이다. 16개 시중은행 중 많은 고객수를 보유한 KB국민, 우리, NH농협 뿐 아니라 대부분 지방은행이 빠져있다.
“카카오측에서 펌뱅킹 수수료를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책정했다”는 것이 은행들의 공통적인 불만이다.
펌 뱅킹(기업체 컴퓨터와 금융기관의 서버를 연결한 금융서비스) 거래 시 카카오는 은행에 펌 뱅킹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 은행마다 펌 뱅킹 수수료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은행은 통상 해당 기업으로부터 펌 뱅킹 수수료로 400~500원을 받는다. 그러나 카카오는 송금서비스 참여를 은행에 제안하면서 이보다 많이 낮은 수수료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A은행 관계자는 “카카오송금은 실시간 펌뱅킹 방식으로 기존 은행이 받던 수수료에 부합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지만 턱없이 낮은 수수료 지급 제안을 해왔다”며 “간편 결제 서비스를 하는 네이버, 토스, 쿠팡, 옥션, 지마켓 등 기업들과 비교해도 10분의 1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도 나지 않고 뱅킹의 고유 영역인 송금을 내줘야하는데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B은행 관계자도 “은행 내부에 간편결제사업자와 제휴 시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정당한 수수료, 고객접점 확보 두가지를 지켜야한다”며 “그러나 카카오 측은 낮은 수수료 책정 뿐 아니라 배너 등 고객 확보를 위한 은행의 요구사항도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어 “간편송금은 은행 본연의 킬러 서비스”라며 “이 부분을 내주는 것인데 카카오가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방은행도 카카오의 낮은 수수료 책정에 불만을 토했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시장을 열어주면서 수익도 얻지 못하고 마켓셰어(시장점유율)도 늘리지 못하기 때문에 당장 참여할 생각이 없다”며 “지역 기반 고객이 카카오페이 송금을 사용할 비율도 크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금융기관들이 IT업체에 종속되지 않고 고유 페이를 갖고 싶어하는 분위기”라며 “카카오페이 송금이 선불식 충전방식이기 때문에 서비스가 활발히 이뤄질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지방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대거 참여하면 지방은행도 따라가야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참여가 저조할 것 같다”며 “카카오가 대기업이 되면서 은행과 관계에서 갑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 측은 은행에 지급하는 펌뱅킹 수수료에 대해서 언급을 꺼렸다. 다만 은행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협의를 통해 진행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카카오는 현재 고객에게 카카오페이 송금 서비스에서 연결 가능한 은행이 없으면 은행 추가를 요청하라고 안내 중이다. 카카오는 “수요조사를 통해 은행에 참여를 요청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재 5개 은행만이 참여하지만 실적은 나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현재 참여 중인 신한, SC제일 은행만 합쳐도 온라인고객이 2000만명”이라며 “현재 송금 체험 이벤트를 통해 활성화 단계인데 이달 말 관련 실적과 수치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카카오페이 송금 서비스가 잘되고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하면 은행들이 점차 참여의향을 밝힐 것으로 본다”며 “은행과 경쟁이 아니라 파트너로 시너지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제휴 모델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은행권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들한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잠재 고객도 확보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 금융기관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제휴 모델을 제시할 예정이고 고객이 참여 은행의 비대면계좌개설을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카카오의 노력이 은행들 참여를 끌어낼지는 미지수다. 시장 안팎에서는 이번 카카오와 은행 간 논란이 단지 수수료 문제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앞두고 IT업계와 금융권 간 플랫폼 선점 경쟁이 촉발된 사례라는 분석이다. 카카오가 송금 서비스를 통해 은행 고유영역인 서비스를 종속시키고 더 나아가 은행이 보유한 고객 정보 등을 활용해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으로 연계하거나 다양한 부가사업으로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은행권은 수십년간 지켜왔던 텃밭을 IT를 앞세운 새로운 도전자에 내줄 위기에 처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카카오가 송금서비스까지 장악하면 계좌 기반 고객 정보를 내줘야하는 입장이고 향후 플랫폼 종속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은행권에 확산되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에 대해 선을 긋고 있지만 은행은 이미 카카오를 경쟁 상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김지혜 금융산업/금융IT 기자 jihye@etnews.com,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
길재식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