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무원, 책임감의 무게를 느껴라

[기자수첩]공무원, 책임감의 무게를 느껴라

“○○○ 제품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기사에도 많이 나왔고….”

모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SW) 구매 담당자와 통화하다가 순간 귀를 의심했다. 통화 내내 특정 SW를 정하고 사업을 발주한 적 없다던 담당자가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얘기한 것이다. 말을 내뱉고 난 후 놀란 기색이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그는 “아까 얘기한 건 없던 걸로 해 달라”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오해입니다. 다음(사업 발주)에는 정확히 할 겁니다.”

이튿날 또 다른 공공기관의 SW 구매 담당자와 통화했다. 담당자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오해를 풀고 사업을 다시 진행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발주한 사업은 되돌릴 수 없다. 이번 사업은 문 닫았으니 다음 사업 때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얘기다.

이들 2명의 담당자가 모든 SW 구매 담당 공무원을 대변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특이한 사례일 뿐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공기관의 구매 담당자에게는 기업의 담당자와 다른 책임감이 필요하다. 국민 세금으로 사는 물건으로 국민에게 돌아가는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해야 한다. 구매를 통해 국민 세금이 다시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책임감의 무게가 기업보다 훨씬 무겁다. 구매 결과가 한 기업이 아니라 수십, 수백개 기업과 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국산 SW를 무조건 선택하라는 무모한 책임감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구매 사유가 명확해야 한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더라` `이번만 기회는 아니지 않으냐`는 등의 답변은 책임감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 제품을 팔아 보려는 국내 기업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자세다.

경제가 힘들다. 중소기업은 더 힘들다.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판매하는 것이 절실하다. 국민 세금을 쓰는 공무원의 책임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구매한 돈은 돌고 돌아서 다시 공무원 월급으로 들어간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