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연결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은 더 이상 정치, 경제, 문화 시스템에 뒤쳐지거나 이끌려가서는 안 된다. 플랫폼은 사회 구성원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경쟁하면서 발전하고 진화해 왔다. 물론 민주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은 다른 사회 시스템과 공존하거나 공생하는 특성을 띠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이 정당화되곤 했다.
하지만 이용자 선택권을 확장하고 공공이익 파레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정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 추세인 방송과 통신 간 장벽 허물기에 동참할 수 있고, 시장 친화 및 민주적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최근 방송·통신 분야에서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논란이 뜨겁다. 찬성 측에서는 소비자 편익과 산업 발전, 반대 측에서는 경쟁 저해와 산업 후퇴를 각각 주장한다. SK텔레콤과 경쟁 관계에 있는 사업자는 연일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업자 간 자율적 M&A에 대해 경쟁 사업자가 지나치게 반대 공세를 펼치는 것은 자유로운 경쟁과 소비자 선택권을 무시하는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KT는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이 30%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이 합병하더라도 여전히 1위다. LG유플러스도 이동전화, 초고속인터넷, 유선전화 가입자 수와 매출액이 상승 추세에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의 이동전화 가입자와 매출액 점유율은 지난 10년 동안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CJ헬로비전 역시 지역 케이블TV 가입자 이탈로 매출이 급감, 성장 동력을 잃어 가고 있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은 뉴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다. 이번 M&A는 침체된 방송·통신 시장에 경쟁을 통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소모성 논란은 지난 6개월로 충분하다. 정부는 각 사업자 입장을 토론회와 공청회 등 공개된 채널을 통해 여러 차례 확인했다. 더 이상 새로운 사실에 기반을 둔 주장은 없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만 증폭되는 양상이다. 두 회사의 합병 발표 이후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계적으로 이동통신사 M&A에 걸리는 시간이 평균 59일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3배가 넘는 시간을 정부는 허송했다. 이 기간에 국내에서는 M&A를 통해 누가 더 이익을 보느냐는 소모성 논란이 지속됐다. 21세기의 새로운 방송 플랫폼 구축과 소비자 선택권 확장이란 대의는 자취를 감췄다.
정부의 역할은 명확하다. 정부가 선언했듯 방송·통신 융합을 통해 미디어 플랫폼을 다양화함으로써 창조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국내 통신과 미디어 시장 구조 개편이 늦어지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산업 전반이 다시 침체 위기에 놓였다. 좌고우면, 우왕좌왕한다면 무능력한 규제 기관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 M&A는 경쟁력을 높이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서 고용을 늘리는 효과가 기대된다. 사업 재편을 위한 좋은 기회도 제공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 9월까지 미국 구글의 M&A는 무려 154건이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37건과 비교해서 4배 이상 많다. 중국 기업의 M&A 돌풍도 심상치 않다. 중국은 올해 전 세계 매물 가운데 30%를 독식하며 1분기 해외 M&A 규모만 106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한 해 규모와 맞먹는 수치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과 같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산업에서 발 빠른 사업 재편은 지속 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다. 중국의 M&A 돌풍 이면에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친화형 개방 정책이 버티고 있다. 한때 까다로운 승인 절차로 해외 기업과 합병을 제한하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21세기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심재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shim@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