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발굴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대기업이 `바이오`를 겨냥했다. 세계적으로 바이오산업이 유망 분야로 떠오른 데다 정부 규제도 완화된다.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 `쑥쑥`
바이오의약품은 재조합 DNA 기술을 응용한 의약품이다. 생물공학 방식을 이용, 다른 생물체에서 얻은 단백질과 호르몬을 원료로 한다. 독성이 낮고 작용 기전이 명확해 난치성 질환에 효과가 크다. 반면 합성의약품에 비해 복잡한 제조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변화에 민감하고, 엄격한 오염·불순물 관리는 필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바이오의약품 세계 시장 규모는 2014년 기준 1790억달러(약213조원)에 이른다. 전년 대비(약 196조원) 8.5% 성장했다. 삼성전자가 주력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약 97조원)의 2배가 넘는다. 2020년이면 2780억달러(321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지난해 1조6406억원으로 전년 대비 17.3% 감소했다. 수출은 증가했지만 수입이 감소한 탓이다. 지난해 국내 바이오의약품 수출은 8억924만달러(9156억원)로 전년 대비 37.4%나 급증했다. 수출 효자 상품으로 빠르게 떠올랐다.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도 바이오의약품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2020년 바이오의약품이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매출액 상위 100대 의약품 가운데에서도 46%가 바이오의약품으로 예측된다.
바이오의약품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고령화 가속화와 함께 합성신약 개발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형 다국적 제약사가 연구개발(R&D)에 투입한 비용은 1995년 150억달러에서 2009년 450억달러로 3배 이상 뛰었다. 매년 출시하는 신약 수는 1997년부터 최근까지 44%나 줄었다. 투자수익률도 70% 감소했다. 바이오의약품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바이오가 유망산업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대기업도 차세대 먹거리로 점찍었다. 삼성은 3대 신수종 사업에 바이오를 포함시켜서 매년 투자를 확대한다. LG, SK, CJ 등도 사업부 분할, 인수합병(M&A), 코스닥 상장 등으로 규모를 키운다. 모바일, 반도체 등 기존의 주력 사업이 성장 한계에 부닥치면서 바이오에 거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뉴(New)삼성` 바이오가 핵심
삼성그룹의 매출 4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00조6500억원과 영업이익 26조4100억원을 거뒀다. 전년 대비 매출은 3%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5.5% 증가했다. 스마트폰, 메모리 등 주력 사업의 수요 약세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무엇보다 2년 새 중국 시장 매출이 10조원이나 줄며 큰 타격을 받았다.
보완 사업이 절실한 상황에서 `제2 반도체 신화`를 쓸 산업으로 바이오를 택했다. 바이오의약품 개발 및 생산은 삼성의 강점인 제조업과 유사하다. 반도체, 스마트폰 등 민첩한 대량 생산 기술로 세계 1위에 오른 신화를 재현하는 게 목표다. 바이오의약품이 다른 약품과 비교해 선진국과 격차가 2~3년밖에 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이다.
삼성 바이오는 바이오의약품 개발(삼성바이오에피스), 의약품 위탁생산(삼성바이오로직스)이 두 축이다. 2012년 설립 후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류머티즘 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의 생산 기지로 키우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8년 제3공장이 완공되면 세계 최대의 생산 설비를 갖추게 된다. 최근 4년 동안 삼성이 바이오에 투자한 금액만 3조원이 넘는다. 두 기업 모두 R&D 및 설비 투자에 집중한 관계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SK “바이오 계열사, 2020년까지 14조원 기업으로 성장”
SK도 삼성과 유사하게 개발(SK바이오팜)과 생산(SK바이오텍)을 양축으로 바이오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복귀 후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영역이 `바이오`라는 점도 삼성과 비슷하다.
최 회장은 200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신약 개발 조직을 지주사 직속으로 뒀다. 그룹 차원에서 투자와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2014년 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등 꾸준히 투자했다. 지난해 통합 지주사 출범식에서도 조대식 SK 사장은 `바이오·제약`을 5대 핵심 성장 사업으로 지목했다.
SK 바이오사업은 1993년 유공 대덕기술원 신약개발연구팀에서 시작, 2011년 SK바이오팜이 SK그룹에서 물적 분할해 설립되며 본격화됐다. 중추신경계 질환 신약 개발에 집중, 세계 최초로 임상3상 약효시험 없이 신약 승인을 추진하는 성과를 거뒀다.
SK바이오텍은 SK 바이오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같이 의약품 중간제조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한다. 현재 대덕 내 4개 생산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세종시 명학산업단지에 증설 부지를 확보했다. 현재 16만 리터 생산 규모를 2020년까지 80만 리터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사업 영역을 완제 의약품으로 확장하기 위해 글로벌 유망 업체와의 인수합병(M&A)도 적극 추진한다.
◇LG, 토종 1호 신약 개발 기업 자존심 회복
LG는 대기업 가운데 바이오, 제약 시장에 가장 먼저 진입했다. 1981년 럭키(현 LG화학) 유전공학연구소를 설립, 신약 개발 기반을 다졌다. 2002년에 LG생명과학이 독립법인으로 출범하면서 바이오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토종 신약 1호 퀸놀론계 항균제 `팩티브`도 LG생명과학의 성과다. 이후 대사질환치료군, 백신, 바이오의약품 세 가지를 중심축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LG생명과학은 올해 충북 청주시 오송공장에 백신원제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860억원을 투자한다. 최근 3년 동안 설비투자, R&D 등으로 투입한 금액만 4000억원이 넘는다. 2020년까지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한다.
LG생명과학은 LG전자 매출에 50분의 1 수준이다. 중장기로 LG그룹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질 여력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매년 매출 4분의 1 가까이를 설비와 R&D에 투자하는 이유는 `토종 1호 신약` 개발업체라는 자부심과 미래 성장 가능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LG그룹이 바이오 시장에 뛰어든 지 35년이 흘렀지만 매출은 4000억원대에 머물러 있다. 대기업 바이오 계열사 효시로 불리지만 성장이 더딘 편이다. 어느 때보다 바이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신규 수익원 창출과 자존심 회복을 동시에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린 것도 재도약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현재 회사 매출의 40%는 수출로 거둬들였다.
◇CJ, 식품 시너지 기대…2020년 1조 기업 목표
CJ도 바이오·제약 사업의 역사가 깊다. 1984년 CJ제일제당 제약사업부로 시작해 2014년 CJ그룹 바이오·제약 계열사인 CJ헬스케어를 출범했다. 항체 및 프리미엄 백신을 중심으로 항체베터, 시밀러, 제조합 백신에 집중하고 있다. 2006년에는 약 200억원을 투입, 한일약품을 인수했다. 신규 항체 개발 벤처 ARNT와는 지분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CJ는 식품산업을 주도하는 만큼 바이오·제약도 충분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모든 식품이 약이 될 수 있다`는 비전으로 바이오의약품뿐만 아니라 그린 바이오까지 바이오 영역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4672억원 수준인 매출도 2020년까지 1조원 이상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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