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미디어산업 혁신 동력은 `공정경쟁과 상생`

[ET단상]미디어산업 혁신 동력은 `공정경쟁과 상생`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미디어 산업은 지상파 재송신, 방송통신 결합판매 이슈 등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졌다. 특히 최근 몇 달 동안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기업 결합을 둘러싼 극한 갈등을 보면 우리 미디어 산업이 정체도 아닌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산업의 불투명한 미래, 불확실성의 짙은 안개를 걷기 위해서라도 결론은 빨리 내야 한다.

최근 미국 보스턴에서 개최된 북미 최대 케이블TV박람회 INTX(Internet & Television EXPO)를 다녀왔다. 가장 선진화된 유료방송 환경을 보유한 미국도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케이블 사업자의 고민이 많다는 것은 우리와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다.

지난 10여년 사이 인터넷TV(IPTV)와 위성방송이 커지고, 인터넷TV서비스(OTT)는 무너진 플랫폼의 경계를 파고들고 있다. 최근 50%대 점유율에서 보듯 케이블TV가 독주하던 과거의 영광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사업자의 급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케이블업계가 치열하게 변화와 혁신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것을 행사장 곳곳에서 실감했다.

INTX에서 미국 케이블업계 대표들은 작심한 듯 정책 당국의 OTT 편애 정책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유료방송 영역을 침범하는 넷플릭스, 구글 등 글로벌 OTT에 대한 규제가 느슨한 반면에 자신들에 대한 규제는 점점 강화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정부 비판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행사 전시장에서는 케이블망 기반의 10기가급 인터넷 장비와 OTT처럼 다양한 단말기에서 케이블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가 눈길을 끌었다.

미국 최대 케이블사업자 컴캐스트는 아직 OTT를 제공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변화하고 있는 시청자 요구를 끌어안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 줬다. 특히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을 겨냥해 업그레이드한 컴캐스트 플랫폼 `엑스피니티`는 초고선명(UHD) 화질은 물론 선수 기록, 대회 현황, 관련 뉴스 등을 종합해 검색하고 볼 수 있는 막강한 콘텐츠가 곁들여졌다.

컴캐스트가 지난 2011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지상파방송 NBC유니버설과 수직 결합을 통해 새로운 동력을 확보한 것이 이러한 서비스도 가능케 했다. 컴캐스트 외에도 AT&T(디렉TV 인수), 차터(타임워너케이블 인수) 등 미국 미디어 업계는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업 결합을 혁신 동력으로 삼고 있었다.

그렇다면 국내 케이블TV 사업자들은 무엇으로 혁신의 동력을 삼아야 할 것인가. 미국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우리나라 가입자 규모나 유료방송 수신료가 너무 적다. 대형 케이블사라 해도 가입자 규모 150만~400만명 수준으로는 과감한 기술 투자에 나서기도 어렵다. 경쟁 환경도 통신사의 모바일 결합 상품 공세에는 뚜렷한 대응책도 없다.

그런데 저가 구조의 우리 유료방송 시장이 어찌 보면 역으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유료방송 보급률 포화 상태에서 가입자 뺏기 싸움은 콘텐츠 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정상의 낮은 가입자당 방송수익(ARPU)을 단계별로 정상화해 가는데 업계와 정부는 힘을 모아야 한다.

우선 제도로 결합 판매에 의한 방송 상품 출혈 경쟁을 막고, 사업자는 혁신 서비스로 소비자를 설득해야 한다. 플랫폼과 콘텐츠 사업자들까지 그토록 외치던 `유료방송 정상화`의 길을 열어 공정경쟁과 상생의 방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유능한 최고경영자(CEO), 정부 규제 혁파, 사업자 간 협력 모델 발굴 등 우리에게도 무수히 많은 혁신의 길은 남아 있다.

배석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 bae3050@kc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