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간 3000억원 이상을 국제협력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제협력 수준은 여전히 1990년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제협력이 국가적 어젠다 차원에서 진행되지 않고 개인 연구자 수준에 그치면서 국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국제협력 R&D 투자를 할 때 에너지, 식량, 전염병 해결 등 굵직한 어젠다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제협력분야 정부 R&D 전략적 투자를 위한 정책제언`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동안 과학기술 분야에 국제협력이 각각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었지만 이를 총괄적으로 정리한 데이터는 없었다.
KISTEP은 2012~2016년 사업별 정부 R&D 예산과 해당 사업에서 2012~2014년간 진행된 과제를 분석했다. 8개 부처에서 38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국제협력 R&D 투자 로드맵이 부재한 상태에서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책 연속성과 지속성이 없고 중복 투자도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일례로 해외연구거점사업에서 동일 도시에 유사한 기능과 성격을 지닌 복수거점이 존재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 해외협력거점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28개다. 이 가운데 92.9%가 유럽(3), 북미(7), 아시아(16) 등에 집중됐다. 러시아·동유럽, 오세아니아에는 거점이 전혀 없고 중동아프리카, 중남미에는 각 1개씩만 존재한다.
모두 다른 기관에서 해외 진출 지원이나 네트워크 구축 같은 비슷한 목적으로 협력거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전반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소통채널이 없다. 강점기술을 보유한 국가별 맞춤식 접근전략 부재로 기술별·국가별 효율적 접근도 어렵다.
2016년 국제협력분야 정부 R&D 예산은 3019억원으로 정부 R&D 예산에서 1.6%를 차지한다. 국제협력분야 정부 R&D 투자 필요성은 꾸준히 강조되고 있다. 내년도 정부연구개발 투자방향에도 글로벌 R&D 협력 강화로 `국제협력 연구 강화를 통한 국제적 위상 제고`를 설정했다. 그러나 체계적 방향이 없다.
보고서는 문제점으로 △국제협력분야 정부 R&D 투자전략 부재 △출연연 간 정보공유 부족 △과학기술분야 해외협력 거점 간 연계 협력 부족을 지적했다.
국제협력 R&D 사업의 명확한 정의와 분류 기준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정부 R&D 투자의 체계적 현황을 파악할 수 없어 어느 부처에서 세부적으로 무슨 사업을 하는지 모른다. 이 때문에 중복투자 등 비효율적 투자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출연연 간 정보공유 부족도 문제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소속된 출연연에서 국제협력 관련 다양한 시도와 움직임이 있으나 현황 파악이 부족한 실정이다. 출연연 주요 사업비 내 국제협력과제비는 2012년 408억원에서 2014년 664억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자세한 협력 실태는 파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연구개발 ODA 사업도 1~3년 단기사업이 주를 이뤄 지속성과 연속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단기 사업으로는 결실을 맺기 어렵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외교전문가가 부재하여 이를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는데 어려운 상황이다.
김은정 KISTEP 생명기초사업실장은 “과거에는 선진국 과학기술을 따라가야 해 연구자 기반 연구과제를 진행했지만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역량과 위상이 올라갔으니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관행적으로 연구자 중심 과제로 국제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국익 도모를 위해서는 국가가 어젠다를 세팅해 국제협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