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석화)산업이 정부가 분류한 5대 구조조정 분야에 들면서 앞으로 `기능성·고부가가치 화학소재`로 주력을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자·자동차 등 국내 수요 산업에 대응하고, 중소·중견기업 주축으로 기능성 소재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12일 정부·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능성 화학소재 부문에서 우리나라 경쟁력과 영향력이 선진국에 크게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이 최근 발간한 `기능성 화학소재산업 현황과 전망`에 따르면 세계 기능성 화학소재 시장은 북미(미국), 유럽(독일·프랑스), 일본이 전체 시장 54%(2013년 기준)를 점했다. 건축·세제·식품·음료 등 B2C(소비자 대상 거래) 분야는 유럽·미국 기업이, 전자재료·고기능 필름·토너 원료 등 B2B(기업간 거래)는 일본 기업이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업계 점유율은 통계에 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기능성 화학소재는 전기·전자, 자동차, 이차전지, 의약품 등 생산에 필요한 특수 기능을 가진 소재를 통칭한다. 평판디스플레이패널(PDP)에 사용되는 편광 특성과 이차전지 분리막 등 특수기능을 발휘한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미국과 독일, 프랑스, 일본 기업이 세계 기능성 화학소재 시장을 사실상 석권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세계 기능성 화학소재 시장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다”고 말했다.
기능성 화학소재는 높은 부가가치로 국내외 시장 확대가 기대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전자분야에 이어 자동차용 전자재료와 분리막 재료 등으로 분야도 확대 중이다. 세계적 화학 기업은 대형 인수합병(M&A)과 사업 재편으로 기능성 화학소재 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유럽 화학기업은 범용 석유화학 사업을 매각하고, 기능성 화학으로 사업 분야를 전환했다.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BASF)는 2000년대 이후 의약품·스티렌 사업을 매각하고, 첨가제·화장품·촉매 사업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과감한 M&A와 바이오 등 `비(非) 경기순환적` 분야 사업 확대로 이익 극대화 전략을 취한다.
일본 화학기업은 전자재료 분야의 압도적 점유율을 고수하면서 헬스케어·에너지 등 고성장분야 점유율 확대를 도모한다. 미국과 유럽기업 중심 과점화에 대응하고 우리나라와 중국 등 신규 국가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한 복안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기능성 화학소재 산업 기반을 구축해 세계시장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전자·자동차 등 우리나라가 강점 가진 수요산업 분야 위주로 기능성 화학소재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 본부장은 “전자와 자동차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데 소재를 수입하는 말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 같은 강한 수요산업 위주로 기능성 화학소재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해 석유화학 산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정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화학소재융복합센터장은 “기능성 화학소재 산업은 소량 다품종 사업이고 제품 주기가 짧아 중소, 중견기업에 적합한 데 이들 기업 기술력과 기반시설 등은 부족하다”면서 “기반시설 구축만으로도 몇백억원씩 드는데 정부가 나서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 R&D 지원, 세제 혜택을 확대할 예정이다. 중소·중견기업 위주로 정책을 지원하지만 대기업 역할도 주문했다.
김종철 산업통상자원부 철강화학과장은 “기능성 화학소재가 새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기업도 고기능 부분 투자나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며 “우리나라가 세계적 수준 스폐셜티를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재부품핵심개발 사업 등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