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 검토를 공식화한 가운데 제도 폐지에 따른 부작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의 긍정적 효과가 사라지면서 이동통신 시장이 혼탁했던 시절로 돌아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되면 중요한 것은 지원금이 아니라 `판매 장려금(리베이트)` 경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투명하고 평등하게 공개된 지원금은 오를 가능성이 낮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지원금은 상한을 폐지했는데, 판매장려금만 암묵적 상한(30만원)에 묶여 있다면 사업자 반발이 커질 수 있다. 사업자가 판매장려금 상한에 반발하지 못했던 것은 지원금 상한 때문이었다. 지원금 상한을 도입해 시장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반대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금 사슬을 풀고 시장 활성화로 돌아선 이상 판매장려금도 풀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다.
통신사 관계자는 “판매장려금 상한 30만원은 명확한 근거 없이 방통위가 2014년 말 아이폰 대란 때 시장과열이 일어난 시작점으로 지목한 금액”이라며 “지원금 상한이 오르면 판매장려금도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사는 지원금을 높일 이유가 대단히 낮다. 평등하게 모든 구매자에게 높은 지원금을 줄 이유가 없다. 가만있어도 잘 팔리는 신제품일수록 더 그렇다. 15개월이 지난 휴대폰은 이미 지원금 상한이 없다. 더욱이 선택약정 요금할인율(현행 20%)이 오를 수 있어 지원금 상향 조정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신제품에 지원금을 상한까지 지원한 사례는 없다. 지원금이 일부 오를 가능성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크게 오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대신 통신사는 선택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판매장려금을 선호할 것이라는 우려다. 시장을 시간이나 장소, 목적에 따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재원을 지원금보다는 판매장려금으로 사용할 유인이 큰 것이다.
단통법은 이동통신 시장 `고질병`이던 통신과소비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평균 가입요금은 단통법 이전 4만5000원에서 올 3월 4만원으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가계통신비는 15만1000원에서 14만5000원으로 내렸다. 기기 변경가입 비중이 26%에서 47%로 늘어난 것도 중요한 성과다. 무의미한 가입자 뺏기 전쟁이 급감했다. 프리미엄 휴대폰 출고가가 내리고 중저가 휴대폰이 인기를 끌었다. 요금·서비스 경쟁이 가열되기도 했다.
지원금 상한제 폐지는 `판매 장려금 상승`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이동통신 시장을 단통법 이전으로 돌려놓을 가능성이 있다. 지원금이나 장려금을 미끼로 고가요금제 가입을 유도할 수 있다. 제조사는 출고가를 다시 높일 유혹에 빠진다. 얼마든지 지원금을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적인 통신경쟁력 확보에 나서기보다는 퇴행적인 보조금 경쟁에 다시 뛰어들 유인이 커진다.
이는 글로벌 통신시장 흐름과 전혀 맞지 않는 `역주행`이다. 해외 주요국은 포화시장에서 보조금 경쟁은 가입자 유치 효과가 적은 `제로섬 게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보조금을 없애는 추세다. 대신 요금·서비스 경쟁을 장려한다. 미국·일본·영국·스페인 등이 통신사 보조금을 폐지했거나 줄여나가고 있다. 중국조차도 지난해 요금을 내리는 대신 보조금을 줄이도록 했다.
보조금 경쟁이 펼쳐지면 재정 여력이 없는 알뜰폰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알뜰폰은 평균요금이 이동통신 절반에 불과해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가 컸다.
업계에서는 정부 결정이 성급했다고 지적한다. 내년 9월 지원금 상한제 일몰까지 지켜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원금 감소→요금 및 단말가격 하락`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시간을 줬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통신사 임원은 “정부가 사업자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내린 결정이어서 당황스럽다”며 “단통법의 긍정적 효과가 정착될 수 있도록 일몰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