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등장하는 로봇 센티넬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등장하는 로봇 센티넬

최근 호모 사피엔스는 고민이 많다. 이들은 스스로가 지구 위에 생물 중 가장 진화된 존재라고 믿었다.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그 위치가 위태로워졌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바둑에서 이기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일자리를 로봇에 빼앗기거나 AI에게 통제 당하는 세상을 그리기도 한다. 일종의 디스토피아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 공포를 영화·만화·소설 등에 투영시킨다. 공포를 극복하려는 욕망을 담아 많은 SF 장르를 만들었다. 초능력자나 마법사 등 신기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호모 사피엔스를 억압하는 로봇과 싸운다. 구세주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영웅이자 추구하는 자화상이다. 레이저를 쏘고, 번개를 일으키며, 철을 움직이는 `엑스맨`도 대표적인 영웅이다.

2014년 개봉한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천재 과학자가 발명한 로봇 `센티넬`로 인해 세상의 모든 돌연변이(뮤턴트)가 죽임을 당하는 세상을 그렸다. 돌연변이는 불을 뿜거나 공간을 이동하는 초능력으로 대항하지만 그 기술을 베낄 수 있는 로봇 센티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센티넬을 만든 과학자 트라스크가 돌연변이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 트라스크는 돌연변이를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였다. 초능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돌연변이에게 호모 사피엔스는 하찮은 존재다.

트라스크는 “그들(돌연변이)에게는 자신이 호모 사피엔스고 우리(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자가 됐다. 하지만 새롭게 진화한 돌연변이가 호모 사피엔스를 과거 종(種)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공포가 센티넬을 탄생시켰다.

현실을 보면 아직까지 눈에서 레이저 빔을 쏘는 돌연변이는 없는 듯하다.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서 가장 진화된 존재처럼 보인다. 오히려 호모 사피엔스가 만들었지만 창조주를 위협하는 AI가 더 무서운 존재가 됐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AI를 두려워하는 공포심은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과거 어둠을 무서워한 호모 사피엔스는 불을 활용하게 됐다. 지금은 철까지 녹이며 자신의 닮은 로봇을 만든다. 위협적인 것도 감안하면서 좀 더 진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다.

AI는 위협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위협을 인지하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는 결국 `해답`을 찾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