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후체제에 진입하면서 우리나라는 에너지 정책을 과거 공급 위주에서 수요 중심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바로 에너지신산업이다. 수요 관리와 태양광 렌털,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대표되는 에너지신산업은 전통 에너지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구글과 테슬라 등 신흥강자 출연으로 에너지시장은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있다. ICT 기업의 새로운 먹거리로 각광 받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본체가 아닌 일부 작은 시장만 열리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에너지신산업이 새로운 시장으로 발전하기 위해 ICT 기업 참여와 이를 독려할 지원 환경이 필요해 보인다.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 6월 정례회
-일시:2016년 6월 15일 오후 6시30분
-장소:서울 역삼동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회의실
◇주제발표
-나승식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신산업정책단장
◇패널토론
-김성철 벽산파워 이사
-손성용 가천대 전기공학과 교수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나승식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신산업정책단장
지금 세계 경제는 리스크(위험 요인)와 싸움이 한창이다. 미국 금리인상, 중국 경제의 고전, 저유가, IS테러 등 불확실성과 위기 요인이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신기후체제로 친환경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UN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는 지구의 온도 상승을 2℃보다 낮은 수준으로 막아보자는 차원에서 신기후체제가 합의됐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개도국도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를 줄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전망치를 기준으로 한 것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고, 어디가 정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80년대 이미 정점을 찍었던 유럽은 절대량 기준 감축 계획을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법적 구속력을 갖춘 배출권거래제를 실시하는 등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해 발 빠르게 대응한 나라 중 하나다. 그럼에도 감축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 구조에 설비 효율도 너무 좋은 상황이다. 반면, 저유가에 전기요금마저 저렴해 가격 신호에 따른 에너지 절약도 힘든 여건이다.
전력 수급측면에서는 더 이상 공급력을 늘리기 힘든 상황이다. 대형 발전소와 송전탑을 짓는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점점 공급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발생하면서 수요를 조절해보자는 노력으로 바뀌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과 수요부문 조절 추세에서 정부가 선택한 정책이 에너지신산업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소비자가 판매자 역할까지 함께하는 에너지프로슈머가 있다. 현재 시범사업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전력 판매부문 개방의 전단계로 말할 수 있다. 마이크로그리드, 제로에너지빌딩, 전기차 보급, 스마트공장, 폐열 재활용 등 다양한 신산업 모델이 나오고 있다. 다들 쉽지 않은 기술이지만 기존 전통 에너지에는 없던 새로운 가치와 산업을 만들고 있다.
에너지신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ICT다. 수요부문 관리는 결국 에너지를 적시적소에 이동시켜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 취합과 분석을 위한 ICT가 필요하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구글, 애플, 테슬라와 같은 신흥강자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글과 애플은 이제 에너지기업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이는 에너지시장 전환기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에너지 산업은 규제시장·안보시장이라는 특수성에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변화를 시도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는 외부 충격에 따른 변화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새로운 플레이어가 들어오면서 정책과 제도, 산업구조까지 변하고 있다.
변화의 모습이 1980~1990년대 정보통신과 매우 유사하다. 한국전력공사과 한국가스공사의 독과점 해소, 전력망과 가스배관의 망 중립성 얘기, 구조와 법규, 가격까지도 비슷하다. 통신이 콘텐츠와 서비스를 담으면서 융합으로 진화한 것처럼 에너지도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전력 누수와 전력이 필요한 곳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센서, 무선통신, 배터리,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필요하다.
모든 신산업을 다할 수 없겠지만, 일부는 조금씩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아낀 전기를 판매하는 수요자원 시장은, 사업자가 고객의 절전 행동을 모아 이를 전력거래소에 팔고 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한다. 태양광렌털 사업자는 대여 비용과 발전사에 파는 신재생인증서(REP)를 추가 판매하고 있다. 전기차는 새로운 연료의 운송수단을 넘어 스마트카 기술과 함께 휴대폰 다음의 새로운 정보통신 플랫폼으로 기대된다.
지금 에너지신산업 변화가 산업계의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규제 일변도 관행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전기 판매 독점을 완화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수가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집중 연구개발, 펀드와 투자확대, 세제지원 등으로 시작부터 해외진출을 고려하는 노력도 기울인다. 산업계과 에너지산업 전환에 기회를 보고 참여를 많이 한다면 성장 속도도 점점 빨라질 것이다.
◇김성철 벽산파워 이사
에너지신산업이 열리면서 수요자원 중개사업자, 태양광렌털 사업자 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전력을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맞춰주는 것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런 역할을 중개사업자가 할 수 있다. 주식시장에 전문 펀드매니저가 있듯이 에너지시장에도 시장을 촉발시킬 수 있는 전문사업자가 필요하다.
현재 수요관리시장에는 15개 사업자가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유휴 전력을 모아 파는 이들 사업자는 향후 전기차와 에너지프로슈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기차와 에너지프로슈머도 이들 시장을 촉발시킬 수 있는 중개사업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IT다. 가장 적정 시기에 에너지를 조절하는 정보 기술이 에너지와 IT를 연결하는 필수 요소가 됐다. 전력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스마트그리드도 IT가 중요하다. 스마트그리드의 에너지 연결 체제를 실제 물리적 연결처럼 보여주는 것이 IT다.
에너지신산업 사업자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기존 한전이 하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수요관리도 과거 한전의 부하조절 사업이다. 하지만, 한전이 아닌 중개사업자가 시장을 이끌면서 과거 발굴되지 않던 고객이 나오고 있다.
에너지프로슈머 시장은 아직 민간사업자가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한전 관리 하에 이웃 간 전력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이 부분도 한전이 사업자에게 열어줘야 한다고 본다.
현재 수요관리 시장규모는 1500억원 수준이다. 지금 참여 사업자가 이 시장만 보고 참여한 것은 아니다. 에너지신산업 지식을 기반으로 또 다른 에너지산업에서 컨설팅 모델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손성용 가천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
신산업이 생긴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다. 하지만 과연 기대만큼 시장이 열릴 것인지는 의문이다. 현실을 조그만 들여다보면 이웃 간 전력거래, 소규모 분산자원 시장 정도다. 작게 시작해서 소규모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신산업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대규모 산업으로 커지고 고용을 창출할 것인가는 생각해봐야 한다. 어쩌면 신산업 대부분이 일부분의 조그만 시장 형성으로 진행되는 것은 한전과 같은 기득권 저항이 그만큼 적기 때문일 수도 있다.
포지셔닝도 중요하다. 통신사업자, IT사업자, 에너지사업자 모두 속성이 다르다. IT와 에너지는 사업 모델 자체가 정반대다. IT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단기간에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이 익숙하다. 에너지는 이런 단기투자 회수 개념이 없다. 최소 10년 정도를 회수 기간으로 본다. IT는 리스트가 크면서도 고수익인 반면, 에너지는 리스크가 낮은 저수익이다. 에너지 분야에 IT 참여와 융합이 트렌드라지만 과연 IT가 이런 수익구조를 원하는 지는 되돌아봐야 한다.
정책 리스크도 감안해야 한다. 10년에서 20년 동안 사업해야 하는데 과연 이 기간에 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정권 변화에 따른 정부의 정책 변화를 봤을 때 정책 일관성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신산업이라면 리스크가 있더라도 그만큼 성공했을 때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야 한다.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는 에너지신산업 중 하나인 수요관리 관련 핵심 SW를 개발했다. 전력 분야에서 스마트그리드 SW를 개발하고 있지만, 시장 개발이나 상용화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IT산업처럼 빠른 성과를 내기 힘들다.
신산업 규모가 중요하다. 지금 수요관리 시장 규모는 한 사업자가 도맡아도 중견기업 정도면 담당할 수 있는 크기다. 이웃 간 전력거래도 한 달 거래량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참여 활성화는 한계가 있다. 신산업이라고 하면 중소·중견기업 70~80개 정도가 활동할 수 있는 크기가 돼야 한다.
사업자 간 역할 구분도 중요하다. 발전사, 송배전사업자, 재판매 사업자 등 역할 구분이 명확해야 새로운 사업자가 나타날 수 있다. 과거 통신사가 망, 설비, 콘텐츠, 고객 관리를 도맡아 했을 때와, 지금 콘텐츠, 서비스 부문 다양한 기업이 들어선 것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최근 에너지 부문 개방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기관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좋다.
시장 타깃팅도 잘 해야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 메이커들의 가장 무서운 적은 테슬라가 아니다. 전기차보다는 우버 시스템이 더 무서운 적이 될 수 있다. 차량 공동 사용제가 활성화 된다면 차가 안 팔리는 시대가 올 수 있다. 개체를 넘어 시스템이 경쟁하는 시대가 온다.
이런 관점에서 IT 분야는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한전이라는 시장, 국가 전력 그리드라는 것을 넘어 전기가 사용되는 모든 기기가 연동되는 세상을 생각한다면 어마어마한 시장이 열릴 것이다.
게임과 콘텐츠 비즈니스를 논하며 대박을 꿈 꿔왔던 IT 전성기가 에너지 쪽에서도 열릴 것으로 본다. IT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투자했으면 좋겠다.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
, 사진=박지호 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