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속 케케묵은 콘돔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천연소재를 사용해 이물감을 줄이고, 데이터 분석으로 한국인 체형에 맞는 제품 개발이 시도된다. 숙박, 카페 등 다양한 업체와 제휴해 마케팅도 활발하다. 성 문화가 바뀌면서 보수적이던 콘돔 시장도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24일 피임기구 업계에 따르면 일회성 저가 소모품이던 콘돔이 새로운 기술, 마케팅이 접목되며 재탄생한다. 성 의식 변화, 질병, 낙태 등 사회적 이슈와 결합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할 조짐이다. 시장을 독점하던 외산 업체를 겨냥한 국산 브랜드의 추격도 매섭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국내 콘돔시장은 130억원으로 추정된다. 연간 시장 규모는 약 300억원 정도다. 전 세계 시장 규모(약 9600억원)와 비교해 미미한 수치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대폭 확대된다는 분석이다.
콘돔의 성공은 착용감과 안전성, 편의성이 좌우한다. 얇으면서도 질기고, 적정 수준 윤활제를 어떻게 혼합했는지가 관건이다.
기존 콘돔은 주로 라텍스와 폴리우레탄을 소재로 사용했다. 피임 기능을 유지하되 두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후 사용자 이물감과 자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천연 라텍스를 활용했다.
최근에는 천연 라텍스 고무를 모방한 폴리이소프렌을 원료로 사용한 제품도 나왔다. 석유 화학적 정제로 불순물을 제거해 고무 알레르기를 예방한다. 피부에 전달하는 열전도성과 신축성이 뛰어난 장점이 있다.
소재가 진화된 만큼 두께도 얇아졌다. 최근 두께가 0.02㎚ 미만 극초박형 콘돔도 출시됐다. 윤활제는 소재만큼이나 콘돔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다. 현재 대부분 제품은 실리콘 오일이 사용된다. 인체에 무해하지만 물에 잘 씻기지 않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친수성 오일이나 천연 알로에를 적용한 콘돔이 개발되고 있다.
안정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인체에 직접 접촉할뿐더러 불량으로 인한 임신, 질병 감염은 치명적이다. ISO 규격은 1.0 킬로파스칼 압력, 18리터 용량을 버틸 수 있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콘돔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면서 시장도 변화 조짐을 보인다. 외산과 차별화를 내세운 국산 브랜드 추격이 매섭다.
현재 국내 시장은 영국계 듀렉스가 35% 점유율을 차지해 1위를 달린다. 뒤를 이어 일본 오카모토가 20%대 점유율을 기록한다. 시장 절반 이상이 외산이다.
두각을 나타내는 국산 브랜드는 아우성(동아제약), 바른세상(컨비니언스)이 대표적이다. 시장 1위인 듀렉스가 옥시 계열사라는 점이 알려지며 여론이 악화됐다. 선두와 격차를 좁히는 기회로 삼는다.
아우성은 동아제약이 콘돔 제조사 유니더스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OEM) 형태로 공급받아 판매 중이다. 2003년부터 판매를 시작해 지난해 25억원 매출을 거뒀다. 넓은 영업망을 무기로 시장 3위를 차지한다. 최근 출시한 `맨스킨`을 포함해 6개 제품을 보유한다. 올해는 전년대비 20% 성장한 30억원 매출을 기대한다.
바른세상은 `한국인에 적합한 콘돔`이라는 것을 차별화로 내세웠다. 자체 설문조사와 야놀자 등 O2O 기업을 통해 콘돔 둘레, 길이, 두께 등에 관한 피드백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했다. 획일화된 외산제품과 달리 한국인에 최적화한 크기를 찾아 제품화한다. 식물성 원료만 사용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인체 친화적인 제품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무엇보다 콘돔에 대한 인식 전환에 적극적이다. 여성보육원 기부를 포함해 성교육 콘텐츠 개발을 시도한다. 거품입욕제, 향초 등과 함께 로맨틱 패키지를 만들거나 카페, 술집 등과 공동으로 이벤트도 실시한다.
컨비니언스 관계자는 “편의점, 오픈마켓 등을 통해 판매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매출은 50% 이상 증가했다”며 “시장 1위 듀렉스가 옥시 사태로 국내 사업에 타격이 예상돼, 마케팅과 영업을 강화해 격차를 좁히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