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메리엇마키스 호텔에서 열린 유엔 글로벌 콤팩트(UNGC) 리더스 서밋에서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빅데이터 공동과제(이니셔티브)`를 제안한 것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경영철학`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지속 가능 경영을 국내를 넘어 세계로 실천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황의 이니셔티브` 왜 나왔나
KT는 2013년까지 해 온 기업의 사회책임(CSR) 활동을 공유가치창출(CSV)로 전환했고, 올해부터 `지속 가능 경영`을 그룹의 핵심 경영 지침으로 삼고 있다.
이윤을 창출한 뒤 사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경영 활동 자체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을 경영 전반에 확대 적용한 것이다. 단순히 직접 경영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 환경 보호 등 공익 기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게 핵심이다.
KT는 실제로 이사회에 `지속가능경영 위원회`와 `지속가능경영센터`를 두고 지속 가능 경영을 구체화해 실천하고 있다. 글로벌 통신사업자를 선도하고 궁극으로는 `글로벌 기가토피아`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황 회장의 빅데이터 이니셔티브 제안은 KT의 지속 가능 경영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 나가는 시발점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KT가 백령도·청학동·임자도·대성리 등지에 기가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고 안전·교육·의료 등에 활용한 `기가스토리`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 등에 의해 통신사업자가 진행한 지속 가능 경영 우수 사례로 소개된 바 있다. 국내에서 진행한 지속 가능 경영에 자신감을 얻은 KT가 이를 전 세계에 펼치기 위해 나선 것이다.
황 회장은 UNGC 연설에서 “아무도 질병에 고통 받지 않고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이상과 현실에는 큰 차이가 있다”면서 “이것이 지속 가능 경영을 통해 창조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라고 역설했다.
그는 “KT가 글로벌 1등이 된다는 것은 몸집이 아니라 독자 기술로 인류에 헌신하고 기여할 때 달성할 수 있다”면서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로 인류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강조했다.
◇“기술 혁신이 사회 공헌 창출”
황 회장은 UNGC 연설에서 여러 차례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 이윤 창출은 물론 지속 가능 경영을 위해서도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는 통찰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로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매년 갑절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을 예로 들었다.
“엔지니어를 시작한 이후 더 많은 사람을 돕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항상 고민했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바로 `기술 혁신`이었습니다. 과거 매년 반도체 메모리 용량을 갑절씩 증대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모바일기기의 성능이 비약 향상됐고, 비용은 빠르게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혁신 결과는 스마트폰으로 나타났습니다. 스마트폰 발전으로 우리는 금융, 교육, 헬스케어 등 다양한 서비스를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황 회장은 국내외에서 진행한 기가스토리를 기술 혁신이 사회 공헌을 창출한 사례로 들었다. 이날 백령도 360도 사진과 대피소 영상이 UNGC 리더스 서밋 현장에 공개되면서 큰 박수를 받았다. KT는 방글라데시에도 국내에서와 유사한 기가스토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속 가능 경영의 글로벌화에 시동을 걸었다.
황 회장이 통신사 최고경영자(CEO)로서 주목한 것은 `연결`이다. 5G 등 사람과 사물을 연결해주는 새로운 기술 혁신이 일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빅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술 혁신이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물인터넷(IoT)과 가상현실(VR), 커넥티드카, 드론 등 연결에 기반을 둔 기술 혁신을 면밀히 분석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와 질병 예방을 사례로 들었다. KT는 `마이크로 에너지 그리드(MEG)`라는 솔루션을 개발,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함으로써 한 대형 병원의 에너지 비용을 73%나 절감했다. 91% 정확도를 보이며 조류독감(AI) 확산을 막는 데 성공한 빅데이터 분석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KT가 이룬 기술 혁신을 세계에서 활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면서 “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통신사 힘 합쳐 감염병 몰아내자”
`황의 이니셔티브`는 빅데이터 기술의 반복 검증으로 국내에서 가축 감염병을 몰아냈다는 자신감에서 나왔다.
2000년대 들어 전 세계에 걸쳐 조류독감, 구제역 등 전염성 가축 질병이 창궐했지만 누구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전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너무나 다양, 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KT는 자체 빅데이터분석센터에서 조류독감 관련 자료를 정밀 분석, 가축 이동 차량이 전염원임을 밝혀냈다. 조류독감이 고속도로 인근에서만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가축 이동 차량을 조사한 결과 특정 차량이 방문한 농장에서 조류독감이 일어났음을 확인한 것이다. 너무나 단순한 결론이어서 처음에는 정부조차도 믿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효과는 확실했다. 2014년 상반기에 200건을 넘은 국내 조류독감 발병은 KT 빅데이터 예측 시스템 도입 이후 지난해 말부터 올 3월까지 8개월 동안 단 14건에 그쳤다.
KT는 이 시스템을 인간 감염병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정부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KT가 주목한 것은 인간 감염병의 국내 유입은 반드시 발병 국가에 방문한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발병 국가 방문자만 제대로 관리하면 감염병 발생 자체는 막지 못하더라도 국가 간 이동은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봤다.
이 아이디어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경유 국가`다. 입국자가 입국 신고 때 경유 국가를 적지 않으면 감염 여부를 알기가 어렵다.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로밍 데이터`다. 해외 여행객 80% 이상이 사용하는 로밍 데이터를 분석하면 입국자가 어느 국가를 경유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황 회장이 국가 간 로밍데이터를 공유하자고 주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KT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공항 방역절차 표준 공동 제정을 추진하고, UNGC 참여국이나 기관이 원하면 빅데이터를 활용한 감염병 차단 기술을 공유할 방침이다.
황 회장은 “여행 패턴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모으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세계 감염병 확산 경로를 추적, 예방이 가능하다”면서 “많은 국가와 통신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유엔이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