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인터넷 열풍이 일었을 때 온라인 건강관리 솔루션·서비스 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가운데 지금 명맥을 유지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무거운 컴퓨터를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속도의 한계도 있었다. 10여년이 흘러 모바일 시대가 왔을 때 진정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가 왔다고 이야기한다. 인터넷 시대와 모바일이 다른 것은 실시간 측정하는 센서와 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상생활에서 진단·검사는 물론 제한은 있지만 치료까지 가능하다. 질병 발생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도 등장, 헬스케어 산업의 거대한 변화를 예고한다.
만성 질환을 대표하는 당뇨병은 혈당 측정을 통한 관리가 중요하다. 시중에는 손쉬운 혈당 측정과 관리를 내세운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이 많다. 대부분 스마트폰 등 모바일로 연계해 측정된 데이터가 자동으로 전해진다.
이 모델은 진정한 디지털 헬스케어 모습이 아니다. 기기만 연동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가 가장 원하는 것의 하나가 피를 뽑는데 고통을 줄여 달라는 것이다. 센서를 귓불에 찍으면 혈당을 알려 주는 기기가 개발됐다. 환자 고통은 줄이지만 1년에 300만~400만원이 들어가는 비용이 문제다. 소아 당뇨병은 성격이 다르다. 의사는 가능하면 하루 종일 혈당을 측정하라고 권장한다. 어린이가 하루에 수십 번 피를 뽑아내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배에다 바늘이 달린 패치를 붙이고 리더기만 갖다 대면 혈당이 측정되는 의료기기도 출시됐다. 수십만원이 넘는 고가지만 부모는 자식을 위해 기꺼이 지불한다. 연령대에 따른 지불 의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얼라이브코는 휴대용 심전도 측정 장비를 개발했다. 병원에서는 가슴, 팔, 다리 등 12개 부위 측정기를 몸에 붙인다. 얼라이브코 장비는 휴대폰에 모듈을 끼워 간편하게 측정하지만 1개 이미지만 얻을 수 있다. 회사는 장비가 간편함에도 촬영 가능한 이미지 수가 제한돼 있는 데다 중국 기업이 가격 경쟁력으로 밀고 들어오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하드웨어(HW)가 아닌 진단 알고리즘을 개발, 심방잔떨림(심방세동)을 진단했다. 얼라이브코는 심전도 측정 의료기기 업체에서 심방잔떨림을 진단하는 솔루션 회사로 변모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받아 활발히 사업한다.
프로테우스는 약물 복용 여부를 확인하는 스마트 알약을 개발했다. 경구 약물에 결합된 센서를 복용하면 몸에 부착한 패치가 이를 감지하고 블루투스에 전송한다.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스마트폰으로 알려 준다. 의사는 환자가 약을 복용하도록 유도한다. 약을 판매하는 제약회사는 복용이 수월하면 매출이 늘어난다.
지난해 애플이 1세대 스마트워치를 출시했다. 10년쯤 지나면 스마트워치가 심근경색을 경고할 의료기기로 변모할 것이다. 현대의학은 기본이 문제 발생 후 치료로 이어지는 치료 중심형 구조다. 스마트워치에 심전도 센서를 장착해 사용자 데이터를 축적한다고 상상해 보자. 데이터를 분석하면 심근경색 발생 5분 전부터 개연성을 발견할 수 있다. 질병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다. 문제는 심전도 센서를 만들었다고 해도 사용자가 구매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5년치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는데 사용자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가 없다. 그동안 축적한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무조건 혈당을 재어야 하는 소아 당뇨병 환자 데이터나 24시간 각종 생체 데이터가 축적되는 중환자실을 대표로 들 수 있다. 이런 데이터를 활용하면 질병 예측도 불가능하지 않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6에서 IBM과 메드트로닉은 지속형 혈당 측정계를 사용, 최대 3시간 전에 저혈당 발생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발표했다. 5~10분 전에만 저혈당을 알려 줘도 충분히 환자를 살릴 수 있다. IBM은 AI 왓슨을 이용해 최대 3시간 전에 알려 준다.
AI가 발전하면 의대 입시 경쟁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의사는 진료를 통해 환자에게 알맞은 최적의 치료법을 강구한다. 사람은 모든 정보를 알지도 못하며, 학습해서 기계를 쫓아가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눔(NooM)이란 기업을 예로 들어 보자. 회사는 AI 기능을 활용해 다이어트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 단순히 앱을 통해 다이어트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코치를 붙였다. 사용자 130명당 코치를 한 명씩 붙여 관리하게 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AI가 코칭 서비스를 제공해도 잘 따라간다. 그 반대인 경우는 직접 사람이 옆에서 조언도 하는 등 동기 부여를 해 줘야 한다. 이게 바로 미래 의사의 역할 가운데 하나다. 환자 치료에서 최고 결정권자인 동시에 건강에 대한 동반자, 코치 역할을 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의사는 환자와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진다. 현 시스템에서 의사가 AI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문제다.
모바일 시대에 사용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와 번거로운 수고를 덜어 주는 것이다. 헬스케어 솔루션 기업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자사 솔루션이 귀찮은 것을 편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아무것도 안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이라는 것도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다. 헬스케어 산업은 쓸 사람과 결정하는 사람, 돈을 지불할 사람이 모두 다른 특이한 구조로 돼 있다. 이 셋을 모두 만족시키는 솔루션과 생태계,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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