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술? 술!” 중국인에게서 들은 낯 뜨거운 이야기다. `한국인을 상대하는 팁`이란 책자가 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제목과 출처는 모르겠다. 그 책에 따르면 한국인과 비즈니스를 할 때, 1단계, 무조건 첫 날에 실신하도록 술을 먹인다, 2단계, 다음날 아침에 계약서를 들이민다, 3단계, 쉽게 사인을 받는다는 요지의 책이라 한다.
중국에 있는 기업인은 한 번 이상 경험해봄직한 공통된 경험이 있다. “아무개 부장님, 술 잘하시지요? 여기 중국의 명술이 있습니다. 도수는 높지만 다음날 깔끔합니다. 오늘 제대로 한 번 드셔보시지요” 이후 52도나 되는 고량주(백주)가 큰 잔으로 오가고 경쟁하듯 원샷을 한다. 한국인들은 착각한다. 그들도 평소에 그렇게 술을 들이킨다고. 일부 중국의 북방 지역에는 있는 문화이지만 대부분의 중국 지역에는 맞지 않는 관행이다. 그렇게 우리는 중국에서도 원치 않는 술고래가 되어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중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신입사원 시절부터 조직 팀장 시절까지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술 문화에 휩쓸린 점이다. 신입사원 첫 날부터 실신하도록 술을 받았고, 중요한 의사 결정이 술자리에서 이루어졌고, 술을 못하면 팀장이나 임원이 될 수 없다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술에 취하면 누구나 실수를 할 텐데, 서로의 실수를 눈감아 주고 함께 실수를 하면서 동지애를 쌓았던 시절이 가장 후회스럽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술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내가 속한 IT업계는 더더욱 주스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도 비즈니스가 가능한 영역이다. 중국 기업이 한국인들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을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이번 김영란법은 필요한 조치였다는 사견이다. 3/5/10만원 규정이 다소 적용이 까다로울 수 있지만, 시행령이라 하니 차차 보완해 나가면 될 것이다. 이제 한국 기업인도 원치 않는 술자리와 과도하게 길어지는 술자리 대신에, 가정을 돌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한국의 성장도 꺾였고, 청년들은 취업도 창업도 힘겨워하는 이 시대에 `부어라 마셔라` 술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그 정력으로 우리는 좀 더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중요한 의사결정도 정신이 맑은 낮에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의 지사장들이 목숨을 걸고 잘 해내야 하는 것이 바로 `의전`이다. 본사 대표이사, 임원 등 주요 의사 결정권자를 잘 모셔야 자리보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문화가 과연 어느 나라에 또 있는지 의심스럽다. 상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자리를 마련하고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이야 욕먹을 일이겠는가.
하지만 한국 의전 문화는 도를 넘어섰다. 중국에 진출한 지사장은 중국 비즈니스를 잘 하고 중국 비즈니스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본사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 소비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중국에서는 직원이 사장보다, 팀장보다 먼저 퇴근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매일 칼퇴근을 해도 무능한 직원은 아니다. 바로 한국의 `눈치 문화` 때문이다. 한국에서 직급이 낮은 사람은 감히 상위 직급자보다 먼저 퇴근하면 안된다는 불문률이 있다. 일이 없어도 함께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 예의인 회사가 많다. 조선시대의 예의범절이 아닌가?
한국인이 버려야 할 상하 수직문화의 단편이다. 수직문화는 군대문화를 경험한 남성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다. 이곳 중국에서도 수직 문화를 적용하려 든다. 가장 위험한 시행착오다. 지금 세상을 바꾸는 거의 모든 글로벌 IT기업은 `수평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나이, 직급에 상관없이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새로운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 나이가 어려도 더 인사이트가 있을 수 있고,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사장도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아주 쉬운 새출발이 될 것이다.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과 기업인들만큼은 한국 문화와 다른 기업 문화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중국인 직원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그들의 잠재력을 120%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회식은 저녁에 하지 말고 점심에 하라. 직원들의 사생활과 술을 먹지 않을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
신동원 네오플라이차이나 대표 hogenho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