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뇌질환 치료 연구 기대

부산 해운대에서 대규모 교통사고를 낸 김모씨가 뇌전증을 앓고 있었다는 소식에 큰 논란이 일었다. 경찰이 김씨의 사고 원인을 두고 당시 의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30만명의 뇌전증 환자가 있다. 이 외에도 치매, 파킨슨병, 우울증 등 뇌질환을 겪는 사람은 더 많다. 최근 뇌질환을 치료하거나 치료 가능성을 여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래에는 뇌 동작원리가 완벽히 구명돼 사람들이 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아 뇌 회로에 이상이 있으면 작은 칩을 머리에 이식해 치료받는 세상이 될 것이다.

2015년 5월에는 사이언스지에 전신마비 환자의 의도를 뇌파로 읽어 로봇 팔을 조작하는 실험이 성공한 결과가 실렸다. 팔다리 신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전신마비 환자가 머리로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 팔이 개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가 발표한 이 로봇 팔은 뇌에 행동 의도를 읽을 수 있도록 칩을 심고 로봇 팔이 칩의 전기 신호에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척수 장애인 에릭 소토는 총에 맞아 10년 이상 장애를 겪고 있었다. 캘리포니아공대 실험에 참여해 생각과 기계의 움직임을 하나씩 맞춰가며 로봇 팔로 컵을 들고 맥주를 마시고 가위바위보까지 할 수 있게 됐다. 뇌와 기계 인터페이스가 이미 생각을 읽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뇌는 1000억개 이상의 신경세포와 9000억개 이상의 신경교세포로 이뤄져 있다. 신경세포는 서로 연결돼 뇌 회로망을 구성한다. 뇌지도는 신경세포들의 연결관계를 밝혀 뇌 부위 역할을 알아내는 것이 목표다. 뇌의 각 부위에서 발생하는 뇌 신호를 단일 신경세포 수준에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주로 사용한 방법은 해당 뇌 부위에 얇은 금속 전극을 삽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금속 전극 크기 때문에 개수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 동시에 여러 부위에서 많은 수의 신경신호를 측정하기는 어려웠다.

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개발된 게 마이크로머시닝 기술을 이용한 신경신호 측정 전극이다. 미세전자제어기술(MEMS) 뉴럴 프로브 기술을 이용하면 머리카락보다 얇고 작은 실리콘 구조에 수십개의 전극을 동시에 집적할 수 있다. 크기가 작으면 뇌 삽입 시 뇌손상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캘리포니아공대 실험에도 여러 신경세포에서 정확하게 뇌신호를 읽기 위해 MEMS 뉴럴 프로브가 사용됐다.

MEMS 뉴럴 프로브는 1969년에 소개된 개념이지만 1990년대 초가 돼서야 미국 미시간대와 유타대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MEMS 뉴럴 프로브가 연구되고 있다. 고집적 3D 뉴럴 프로브와 다양한 기능이 집적된 프로브다. 고집적 3D 뉴럴 프로브는 전극의 집적도를 높여 뇌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뇌신경 신호를 측정할 수 있다. 다양한 기능 집적된 프로브는 전기 신호를 측정하고 직접 발신해 신경세포를 자극한다.

기술 발달로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정밀한 뇌신경 회로 제어가 가능해졌고 약물 전달과 동시에 약물에 반응하는 뇌신경 신호도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KIST에서 지난해에 스마트 브레인 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 약물과 빛 전달, 뇌신경 신호 측정기능이 집적됐다.

MEMS 뉴럴 프로브를 뇌에 넣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있다. 장기간 뇌에 넣었을 때 발생하는 뇌조직 손상이다. MEMS 뉴럴 프로브가 실리콘으로 이뤄져 뇌에 삽입했을 때 뇌가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뇌조직에 손상을 가한다. 이 때 생성되는 대식세포가 뉴럴 프로브를 감싼다. 전극이 신경신호를 측정하지 못해 뉴럴 프로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최근에는 줄기세포로 뇌 신경세포를 대량생산해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됐다. 듀크대-싱가포르 국립의대의 제현수 교수 국제연구팀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조현병, 자폐증, 뇌전증 등 정신질환에 관여하는 뇌 신경세포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배아줄기세포와 혈액, 피부 등 체세포를 역분화시킨 유도만능줄기세포(iPS) 등을 이용해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를 분비하는 뇌 신경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는 한국뇌연구원(KBRI)을 비롯해 싱가포르과학기술연구원 유전체연구소, 싱가포르국립신경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됐다.

뇌는 흥분성 신경전달과 억제성 신경전달이 이뤄지는데 두 신경전달의 균형이 인간 행동, 감정, 의식 등 뇌 활동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바는 대표적인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이다. 연구팀은 가바가 뇌 속 신경계의 전체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가바 분비 신경세포를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기 위해 촉매제 역할을 할 유전자의 조합을 찾아내고 연구에 사용될 줄기세포에 발현시켰다. 그 결과 기존 30여단계를 거쳐야 하던 과정이 1단계 과정만 거치면 되는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줄기세포가 가바 분비 신경세포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기존보다 3~4배 빠른 6주까지 단축됐다.

줄기세포를 가바 분비 신경세포로 만드는 성공률이 예전에는 40% 정도였지만 이번 연구에서 성공률이 80% 이상으로 높아졌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후속연구로 정신질환 환자에게서 얻은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만든 가바 분비 신경세포를 이용해 정신질환의 원인을 알아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임상에 적용되면 정신질환 환자에게 적합한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