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연일 뜨겁다. 퍼붓는 여론 화살에 얼마가지 않아 백기투항할 것으로 보였던 정부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한국전력은 밀양송전탑 사태 보다도 더한 공격을 받고 있다. 상장된 공기업이지만, 다음 수를 혼자 결정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과 쟁점을 정확히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누진제 요금폭탄 `있다` vs `없다`
누진제 논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항이 11.7배에 달하는 징벌적 배율이다. 요금폭탄 유무만 따지면 분명 요금폭탄을 맞는 소비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 수는 걱정 만큼 많지 않다. 지난해 기준 최고 누진율을 적용받은 가구는 전체 2200만여 가구중 1.2%인 26만여 가구다. 물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에는 그 비율이 조금 올라가지만 그래도 4% 정도다. 여기에 포함된 소비자들은 최소 13만7490원 요금을 청구받게 된다.
지난해 누진단계별 가구 점유비율을 보면 누진제 3단계인 201~300㎾h구간에 가장 많은 소비자가 몰려있다. 8월에는 4단계인 301~400㎾h 구간에 가장 많은 소비자가 몰린다. 4단계 구간은 누진율이 본격적으로 상승하는 구간으로 기존 3단계 구간 소비자가 4단계 구간으로 넘어갈 경우 최고 5만5610원 요금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지난해 약 85% 가구가 8만원 이하 전기요금으로 여름을 보냈다.
◇에어컨 맘 놓고 켜도 되나?
전기요금 누진제에서 에어컨은 아킬레스건이다. 9일 정부 관계자 말처럼 정말 조심히 써야 한다. 스탠드형 에어컨을 한달 내내 틀어놓으면 에어컨만으로도 1300㎾h 전력을 쓰게된다. 이렇게 되면 50만원 이상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게 된다. 적정 에어컨 사용량은 가구별 에어컨 제외시 사용 전기량에 따라 달라지며, 무엇보다 4단계(301~400㎾h) 구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5단계 구간은 조금만 더 사용해도 10만원 이상 전기요금을 청구받을 수 있는 구간이다.
하루에 3시간 30분 정도 에어컨을 쓴다해도 매일 사용하면 스탠드형은 193㎾h의 전력을 쓰게된다. 현재 누진제 요금상에서는 매일 오랫동안 에어컨을 틀어놓기는 힘든 구조다.
◇한전 누진제로 초과이익 챙기나
한국전력이 현재 저렴하게 전력을 구매하는 것은 맞다. 지난해부터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이 계속 떨어지면서 한전의 이익도 올라갔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11조원을 넘어선 것도 이 영향이 크다. 하지만 반대로 2012년도 전후에는 SMP가 ㎾h당 200원대를 오가면서 적자에 허덕이기도 했다. 현재 SMP는 7년만의 최저치인 65원 가량을 기록하고 있다. 누진제로 초과이익을 챙긴다 것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누진제로 인해 징벌적 전기요금을 내는 가구는 그리 많지 않다. 한전 영업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저유가에 따른 발전연료비 인하 영향이 크다.
누진제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보전한다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오해가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 보다 저렴한 것은 맞지만 누진제 수익으로 이를 보전하기에는 규모가 크다. 오히려 누진제는 누진 1단계 저속득층 전기요금을 낮추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누진제 개편 부작용 `있다` vs `없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전력업계 전문가는 국가전력 수급 부문의 계절 격차 심화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지금 여론 분위기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이 점을 가장 부담스러하고 있다. 전력수급 계절격차는 여름과 겨울 등 전기사용이 많을 때와 봄, 가을 등 전기수요가 크지 않을 때 가동하는 발전설비 차이를 말한다.
분명 많은 이들이 누진제 부담에 에어컨을 맘 놓고 켜지 못하고 있다. 누진제가 없다면 여름과 겨울철 전력사용량은 늘어나게 된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선 발전소 추가 건설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름과 겨울을 대비해 발전소를 많이 짖게 되면 그만큼 봄과 가을에 가동하지 않는 설비들은 많아진다.
우리나라 전력시장에 이미 이 문제가 현실화됐다. 수많은 LNG발전소가 봄과 가을에 가동을 하지 못해 적자경영을 하고 있으며, 사업 포기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설비는 봄·가을에 가동하지 않아도 여름과 겨울 피크대비를 위해 유지를 해야한다. 그만큼 유지비가 늘어나고 전반적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는 셈이다. 누진제를 없앴다가 전체 전기요금 인상을 가져올 수도 있는 문제다.
<2015년 주택용 월별 누진단계별 가구수 점유비율 (단위:% / 자료:산업부)>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