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는 주행 거리 한계 때문에 도심에서 주로 타게 되는 `시티카(City Car)`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전기차 대부분도 1회 충전 시 100㎞가량 주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장거리 주행이 불가능하다면 `반쪽`짜리 자동차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은 고효율·고용량 배터리를 장착,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판매에 들어간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공인 복합 주행 가능 거리는 191㎞에 이른다. 도심에서는 206㎞, 고속도로에서는 173㎞ 주행이 가능하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주행은 무리 없이 가능한 수준이다. 현재 전국의 전기차 충전기는 1000기를 넘어섰다. 30분 만에 배터리 70% 이상 충전이 가능한 급속충전기도 고속도로 휴게소 54기 등 전국 곳곳에 450기가 설치됐다. 이론상 전기차 장거리 여행이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본 기자는 지난달 현대자동차가 국내 자동차 기자 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이오닉 일렉트릭 미디어 시승회`에서 연비 14.2㎞/㎾h, 주행 가능 거리 383.4㎞를 기록해 `연비왕`으로 선정됐다. 서울 고덕동에서 올림픽대로, 영동대로 등을 거쳐 여의도 `서울마리나`까지 약 60㎞ 거리를 시승한 결과다. 공인 연비(6.3㎞/㎾h)와 공인 주행 거리보다 2배 이상 높게 나왔다.
전자신문은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장거리 주행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아이오닉 일렉트릭으로 서울~부산 왕복 795㎞ 거리를 주행하고, 실제 장거리 주행에서 효용성에 대해 알아봤다.
◇낮 최고 기온 35.7도. 에어컨 켜고 한 번에 243㎞ 달렸다
지난 4일 진행된 이번 장거리 시승에는 본 기자와 사진기자 1명이 동승했다. 두 사람 몸무게 합은 약 130㎏. 카메라, 노트북 등 장비 무게만 약 8㎏으로 추산됐다. 당시 낮 최고 기온은 서울 35.7도, 부산 31.7도를 각각 기록했다. 무더위 때문에 시승 내내 에어컨 온도를 18~20도로 유지하고, 송풍 강도는 2~4단계로 설정했다. 또 운전석과 동승석 모두 통풍시트를 2단계로 가동했다. 연비주행보다는 일상주행에 가깝게 운전했으며,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등 모든 전자 장비를 활성화했다.
먼저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하행선 코스는 서울 양재동 이마트를 출발해 경부고속도로, 당진영덕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부산 톨게이트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출발 당시 배터리는 94% 충전됐으며, 193㎞ 주행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계기판에 표시되는 주행 가능 거리는 158㎞로 줄었다. 에어컨 온도를 18도로 설정하고 송풍 강도를 4단계로 높였기 때문이다. 5분 뒤 에어컨 온도를 20도로 높이고 송풍 강도는 2단계로 낮췄다. 시내도로를 빠져나와 서울 톨게이트까지 약 15㎞를 주행한 결과 7.9㎞/㎾h라는 연비를 기록했다.
시승 당일은 여름휴가 막바지여서 고속도로에 차가 많았다. 서울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 청주분기점까지 약 106㎞를 주행하는 동안 시속 100㎞ 이상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특히 경기도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평균 시속 80㎞ 속도도 내지 못했다. 가속하거나 정속으로 주행할 때는 `회생제동장치`를 껐다. 반대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회생제동장치를 이용했다. 작동 방법은 스티어링 휠에 패들시프트처럼 붙어 있는 버튼을 당기면 된다. 왼쪽 버튼을 당기면 제동력이 높아지고 오른쪽 버튼을 당기면 제동력이 약해졌다. 제동력은 0에서 3까지 4단계로 나뉜다. 회생제동장치는 제동할 때 발생하는 마찰력을 전기에너지로 전환해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다만 제동 강도가 높아 엔진브레이크 같은 역할을 해서 감속할 때가 아니라면 가속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청주분기점에서는 당진영덕고속도로로 옮겨 타고 상주분기점까지 약 80㎞를 달렸다. 당진영덕고속도로는 속리산을 넘어가기 때문에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계속 반복됐다. 오르막길에서는 최대한 급가속을 배제하고 관성주행을 했다. 어느 정도 가속하고 나서 가속페달에서 발을 뗐다가 다시 밟는 과정을 반복했다. 내리막길에서는 회생제동장치를 1~2단계로 설정하고 속도를 조절했다. 경사가 완만해지면 회생제동장치를 끄고 타력주행도 적극 활용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접어들어서는 연비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주행했다. 배터리 용량이 20%가량 남았기 때문이다. `주변 충전소 찾기` 기능을 켜 보니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완·급속 충전소가 나타났다. 선산휴게소와 칠곡휴게소에 급속충전기가 있다고 나타났다. 약 40㎞ 떨어진 칠곡휴게소까지 연비에 신경 쓰며 주행했다.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고 배터리 용량이 13% 이하로 떨어지자 경고 표시도 나타났다. 칠곡휴게소 급속충전기에 도달했을 때 남은 배터리 용량은 6%, 주행 가능 거리는 6㎞로 나타났다. 총 주행 거리는 243.1㎞, 평균 속도는 시속 87㎞로 각각 나타났다.
칠곡휴게소에서 63%까지 충전하고 나서 서둘러 출발했다. 주행 가능 거리는 110㎞로 나타났다. 부산 톨게이트까지 남은 거리는 134㎞지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중앙고속도로에서는 주행하는 차량이 많지 않아 고속주행 성능도 파악해 볼 수 있었다. 변속기가 없고 최고 토크(30㎏.m)가 전 구간에 발휘돼 가속 성능도 뛰어났다. 약 1시간 30분가량을 달려 부산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트립 컴퓨터에 나타난 총 주행 거리는 390km, 평균 속도는 시속 88㎞, 연비는 9.8㎞/㎾h, 총 주행 시간은 4시간 40분을 각각 기록했다. 주행 가능 거리는 28㎞로 나타났다.
◇야간 안전운행 도와주는 ADAS…고연비 위해서는 직접 운전이 유리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코스는 중앙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서울 목동역까지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부산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가까운 충전소를 검색해 보니 양산 종합운동장에 급속충전기가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트립 컴퓨터상 주행 가능 거리는 160㎞로 나타났다. 퇴근 시간과 겹치면서 경부고속도로 초입에서는 정체가 발생했다.
김해를 벗어나서부터는 원활한 주행이 가능했다. 평균 시속 90㎞ 안팎의 속도로 주행, 1시간 20분가량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동대구 분기점을 통과하는 시점에서 남은 주행 거리는 100㎞, 배터리 용량은 58%. 주변 충전소를 검색해 보니 약 96㎞ 떨어진 선산휴게소와 약 140㎞ 거리의 문경휴게소에 급속충전기가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비가 9.2㎞/㎾h로 나타나 140㎞ 이상 주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휴게소로 향했다.
야간 주행에서는 ADAS 기능이 큰 도움이 됐다. 우선 오랜 시간 운전으로 무릎이 아파서 속도를 시속 100㎞로 설정하고 적응식정속주행시스템(ACC)을 작동시켰다. 가속과 감속이 예상보다 부드럽게 이뤄졌다. 회전 구간에서도 차로유지보조시스템(LKAS)이 차로를 잘 읽고 정교하게 스티어링 휠 회전 각도를 교정해 줬다. 다만 속도가 고정되기 때문에 오르막길에서는 전력 손실이 많았다. 내리막길에서도 속도를 유지하는데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회생제동장치를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
문경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배터리 용량이 18% 남았고, 30㎞ 주행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93%까지 충전을 완료하고 다시 출발했다. 주행 가능 거리는 160㎞, 실제 목동역까지 거리는 186㎞가량 남았다. 밤 11시를 넘긴 시간이어서 휴가철임에도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시속 90~110㎞를 유지하면서 정속 주행이 가능했다. 밤 12시께 여주분기점을 지나 접어든 영동고속도로도 한산했다. 일부 구간에서는 시속 130㎞ 이상 속도도 내 보고 내리막길에서는 회생제동장치를 3단계까지 작동시켜 봤다.
오전 1시께 서서울톨게이트를 통과해 최종 목적지인 목동역에는 1시 30분에 도착했다. 상행 코스 총 주행 거리는 405㎞, 평균 속도는 시속 87㎞, 연비는 9.7㎞/㎾h, 총 주행 시간은 4시간 30분을 각각 기록했다. 남은 주행 거리는 62㎞로 나타났다.
◇충전시간 오래 걸리는 급속충전 방식 해결해야
이번 시승을 통해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고속도로에서 250~270㎞가량 주행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서울~대전`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크게 부담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비를 조금만 신경 쓴다면 출발 전에 충전한 배터리 용량으로 왕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 시내나 경기도 일대를 주행하는 것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울~부산`을 하루 만에 다녀오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편도 거리로만 약 400㎞ 떨어진 거리를 주행하기에는 배터리 용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충전 문제도 있었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최대 87㎞ 이내 거리에 급속충전기가 설치돼 있어서 충전소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급속충전기도 날씨와 배터리 상황에 따라 충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현대차에 따르면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380V·50㎾h 급속충전기로 70% 충전하는데 33분 걸린다. 하지만 혹한기 또는 혹서기에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특히 여름에는 화재 위험이 있어 충전기가 전류량을 적게 보내 시간이 더 걸린다고 환경공단 측은 설명했다.
이번 시승에서도 칠곡휴게소 급속충전기는 94%까지 충전하는데 58분이 소요된다고 표시됐다. 시간 여유가 없어서 63%까지만 충전했지만 40분가량 소요됐다. 양산종합운동장 급속충전기는 94%까지 74분이 소요된다고 나타났고, 문경휴게소 급속충전기에서는 93%까지 48분이 걸렸다. 이번 시승에서 충전하는 데에만 약 162분을 소요한 것으로, 총 시승 시간(13시간)의 약 20%에 해당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1회 충전으로 400㎞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가 개발되거나 충전기 기술이 발달해서 화재 위험은 낮으면서 빠른 충전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류종은 자동차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