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1시 40분. 중국 북서부 간쑤성 주취안 위성발사센터를 떠난 로켓 `창정 2D`에 세계가 주목했다. 지상 500㎞ 상공 우주 궤도에 안착한 이 로켓에는 세계 첫 양자암호통신 위성 `모쯔(墨子)`가 실렸다. 19일 오전 11시 56분 베이징 북동부 미윈현 위성지구국(RSGS)은 모쯔호로부터 202메가바이트(MB) 용량의 데이터를 처음으로 수신했다. 인류 최초로 지구-우주 간 양자암호통신이 성공한 순간이다.
◇세계는 지금 `양자 전쟁`
중국 모쯔호의 성공은 양자암호통신 경쟁을 펼치던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이 분야 권위자인 니콜라스 지생 스위스 제네바대 교수는 “양자암호통신 위성을 선점하려는 국가 간 경쟁에서 중국이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짙다”고 평가했다.
양자암호통신은 양자물리학의 3대 성질(불확정성·복제불가능성·얽힘)을 이용한다. 도·감청을 시도하면 즉시 발각되고, 정보를 가로채도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연산 능력이 뛰어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설 자리가 없는 현행 `소인수분해 암호체계(RSA)`를 대체할 전망이다.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세계 개인정보를 무차별 수집한다는 `에드워드 스노든 폭로`가 양자암호통신 부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IoT) 시장까지 커지자 산업 측면에서도 양자암호통신이 중요해졌다.
스노든의 폭로에 분노한 중국은 지난해 양자기술 투자액을 10년 만에 다섯 배(101억달러) 늘렸다. 2020년 아시아와 유럽, 2030년 세계를 각각 양자암호통신망으로 연결하기로 했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2000㎞ 유선망은 올해 말 구축된다. 모쯔호를 이용해 베이징-신장자치구 2500㎞ 구간을 이은 뒤 베이징-오스트리아 빈 7500㎞ 구간도 연결할 예정이다.
미국은 2009년 `국가양자정보과학비전`을 발표하고 국가안보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등이 산·학·연 연계 방식으로 연간 1조원을 양자기술에 투자한다. IBM,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록히드 마틴 등 민간 기업의 투자액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악관은 지난 7월 `양자정보과학:국가 도전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펴내기도 했다.
지난 2006년 `퀀텀 유럽(Quantum Europe·QUROPE)`으로 공동 연구를 시작한 유럽연합(EU)은 지난 3월 새 프로젝트 `퀀텀 매니페스토`를 발표했다. 2018년부터 10년 동안 10억유로(1조3000억원)를 양자기술에 투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영국, 일본 등도 독자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마저 2월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군사 관점에서 보안전력의 비대칭이 우려된다. 우리보다 먼저 상용화하면 우리는 북한의 교신 내용을 알지 못하는데 북한은 우리를 도청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한국, 선진국과 기술 격차 6~7년…SK텔레콤 `고군분투`
우리나라가 양자암호통신에 적극 관심을 기울인 건 2014년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그해 12월 `양자암호통신 중장기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스노든 사태의 영향을 받았다. 2020년 세계 1등 기술 5개를 확보한다는 비전을 담았다. 올해 5월 `K-ICT 전략 2016`에서는 “양자암호통신 등 정보통신기술(ICT) 유망 분야 투자를 확대한다”고 언급했다.
성과도 있었다. 2월 SK텔레콤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 사옥에 `양자암호통신 국가시험망`을 개소했다. 양자암호통신 관련 장비와 기술을 상용망에서 시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2017년까지 200㎞ 이상의 장거리 전송 기술 개발이 목표다.
하지만 추진 기간이 짧은 데다 세부 실행 전략이 마련되지 않아 투자액이 매우 적다. 유럽 양자정보통신기술연구협의체(QICT)에 따르면 주요 20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연간 양자기술 투자액 1300만유로(160억원)로 17위에 그쳤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4400만유로)보다 못하다.
기술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양자암호통신은 해외 최고 기술력에 비해 5.8년 뒤진 것으로 조사됐다. 선진 기술을 100으로 볼 때 기술 수준이 56.4에 그쳤다. 소자·부품은 더 심했다. 6.7년이나 뒤처졌다. 양자컴퓨터는 비교가 힘든 수준(격차 7.5년)이다.
양자 기술 분야의 한국인 특허출원 건수는 75건으로 미국(518건), 중국(393건), 일본(323건), EU(121건)에 크게 뒤졌다. 특허가 평균 인용된 횟수도 0.6건에 그쳤다. 반면에 우리보다 특허출원 건수가 부족한(73건) 캐나다는 피인용 수가 7.6건으로 압도하는 1위였다. 우리나라 특허가 그만큼 질이 낮은 수준이라는 의미다.
그나마 SK텔레콤 등 민간 기업이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만큼의 성과도 내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은 2011년 분당 사옥에 퀀텀테크랩을 만들고 수백억원을 투자, 독자 기술을 개발하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다.
◇알파고·포켓몬 고·자율주행차…“언제까지 유행만 좇을 건가”
양자암호통신은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5000억원 규모 투자 계획을 담은 국책 과제가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앞뒀다. 1차 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제성 부족`이 가장 큰 이유라고 전해졌다. 30일 추가심사를 진행한다.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양자 강국이라는 목표도 물거품이 된다.
양자기술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될 것을 우려해 지난해 11월 서상기 전 새누리당 의원은 퀀텀특별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무산됐다.
양자 업계 관계자는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산업의 미래 경제성을 정확히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중요하지 않다면 세계 각국이 왜 천문학 규모의 비용을 투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기회에 정부의 ICT 투자 방향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먼 미래를 내다보기 보다는 지나치게 해외에서 유입된 유행에 휘둘린다는 것이다.
알파고와 포켓몬 고,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 이슈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해당 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 정책을 내놨다. 해외 주요국이 상용화와 거리가 먼 양자암호통신에 10여년 전부터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것과 대비된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교수는 “중국은 양자위성까지 쏘았는데 우리는 걸음마도 시작을 못했다”면서 “유행이 아니라 어떤 기술이 가진 가치를 정확히 알아보는 안목에 따라 정부 투자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