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타구는 왼쪽! 타구는 왼쪽! 담장 넘었습니다’
아무리 극적인 순간이라도 캐스터가 어떻게 중계하느냐에 따라 시청자들이 받는 감동의 크기는 달라진다.
MBC스포츠플러스 한명재, SBS스포츠 정우영, KBS N 스포츠 권성욱 등이 드라마틱한 스포츠의 묘미를 가장 잘 살려서 전달하는 대표적인 캐스터로 꼽힌다.
정용검 역시 경기가 박빙일수록 긴장감 있는 어조를 사용하며, 시청자들의 경기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대부분의 스포츠 캐스터들이 극적인 상황에서 샤우팅을 하거나 급박한 상황에서는 긴장감 느껴지게 중계하는 편이에요. 그걸 어떻게 맛깔나게 살리는 지가 캐스터의 역량 차이인 것 같아요. 물론 경기를 풀어가는 것도 캐스터의 주요 능력이지만 긴장감을 만들어 시청자들을 쫄깃하게 하는 것도 캐스터가 갖춰야 할 역량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상황이 아니거나 승부가 일찍 기울어졌을 때는 정용검의 능수능란한 입담이 빛난다. 그는 마치 토크쇼 MC처럼 해설위원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중계방송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모든 중계를 게임 진행 상황만 전달하고, 경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중계방송도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쇼라고 생각해요. 항상 긴장감만 조성할 게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줄 때는 풀어주고, 조여야 할 때는 확실히 조여 줘야 한다고 봐요. 그걸 조율을 잘하는 게 저한테 주어진 숙제인 것 같습니다.”
정용검이 중계했던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기는 어떤 경기였을까.
“작년 6월 6일에 목동구장에서 열렸던 넥센과 두산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8-6으로 넥센이 리드 당한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김민성 선수가 동점 투런 홈런을 날렸었죠. 그날 경기는 넥센이 8-0으로 지고 있다가 9-8로 뒤집었던 경기였어요. 경기 시간도 길었고, 연장전까지 갔던 게임이었는데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었던 게임이라 기억에 남아요. 그때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9회말 2아웃은 어떻습니까’라는 멘트를 했었는데 그게 따로 준비했던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나왔던 멘트였어요. 항상 긴박한 순간 갑작스럽게 생각나서 하는 멘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중계할 때 수식어구가 많거나 미리 멘트를 정해놓는 건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스포츠 캐스터들이나 해설위원들은 연장전으로 돌입하거나 경기 시간이 길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근무시간이 늘어나더라도 따로 추가수당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천 취소 결정이 빠른 한국 프로야구와 달리 미국 메이저리그는 우천 중단됐을 때, 경기 재개까지 시간이 한참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캐스터와 해설 모두 속절없이 스튜디오에서 대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천연기로 인해 더블헤더(하루에 2경기)가 편성됐을 때는 2경기를 연속으로 중계해야 하는 고충도 있다.
“제가 작년에 중계를 맡았던 메이저리그 경기가 우천취소가 돼서 더블헤더가 된 적 있는데 두 번째 경기가 다섯 시간 반이 걸렸어요. 그날은 12시간 가까이 중계 부스에만 있었죠. 재작년에는 제가 맡는 경기마다 연장전이 정말 많아 ‘연장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은 적도 있어요. ‘정용검이 중계하는 경기는 모두 연장전을 가지 않지만, 연장전을 갔던 경기에는 항상 정용검이 있었다’라는 말도 들었어요.”
정용검은 ‘MC용검’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MBC스포츠플러스 중계에는 경기 후반부 그날 게임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게임트랙’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정용검이 마치 속사포 랩을 하는 것처럼 하이라이트를 설명해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게임트랙’은 시청자들에게 ‘용검트랙’으로도 불리며, 정용검의 빼놓을 수 없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제가 말하는 속도가 빠른데 급격하게 바뀌는 하이라이트 화면 속도를 따라가면서 경기를 훑어주다 보니 보는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말만 빠르게 했었는데 지금은 경기 전체적인 내용을 잘 전달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어찌 됐건 ‘게임트랙’이 제 트레이드마크가 된 건 사실이죠.”
항상 즐거운 중계방송을 추구하는 정용검은 프로농구 중계 도중 ‘먹방’ 중계라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날 경기장에서 춤을 추면 치킨을 나눠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치킨을 좋아하는 현주엽 해설위원이 저보고 춤추라고 시켰어요. 그래서 작전시간에 춤을 춰서 치킨을 얻어냈죠.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중계지만 해외에서는 이런 시도가 많아요. 각 구장의 맛있는 먹거리가 있으면 중계 도중 캐스터나 해설위원이 직접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에서도 그런 재밌는 중계가 많이 나온다면 좋을 것 같아요.”
지난달 25일에는 마이애미 말린스 투수 호세 페르난데스가 보트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가 전해지며, 메이저리그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의 등판 경기를 여러 차례 중계했던 정용검 역시 이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캐스터지만 그 어린 선수한테 기대를 정말 많이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 궁금했던 선수였는데 사망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었죠. 저랑 알고 지낸 선수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처럼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해설위원들과 캐스터들에게도 충격적인 소식이었어요.”
정용검이 생각하는 스포츠의 매력은 어떤 걸까.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스포츠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도 예상되는 결말이면 재미없듯, 스포츠 역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만 흘러간다면 분명 재미없을 거예요. 하지만 스포츠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때 사람들이 희열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끝으로 정용검은 팬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앞으로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시작되니까 MBC스포츠플러스를 통해 많이 시청해주시고, 곧 개막하는 프로농구 역시 많이 사랑해주세요. 우리 다 같이 재밌게 스포츠 봅시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