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당기려면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의 `초저전력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산업계와 학계가 일치된 견해를 내놨다. 이들은 단순 응용기술 개발에 국한되지 않고 핵심 부품인 반도체의 초저전력화 원천기술 개발에 정부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양대, 국가나노인프라협의체(KION),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18일과 19일 양일간 `IoT 초저전력 나노전자 국제워크숍 2016`을 개최했다. 미래창조과학부, 한국연구재단(NRF)이 행사를 후원했다. 이 자리에는 세계적 수준의 반도체 분야 석학과 산업계 관계자가 모여 초저전력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최리노 인하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단순히 몇% 전력소모량 절감 등 성과만으로는 안 된다”면서 “10년 장기 기술개발 로드맵을 세워놓고 지금 주력 제품보다 전력 소모량을 1000분의 1 수준까지 줄이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긴 힘들다”고 말했다. 이렇게 전력소모량을 낮춰놓으면 전력변환 효율이 낮은 태양광 셀만으로도 모바일 장치를 구동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후발주자인 중국에 반도체마저 따라잡히면 대한민국 경제는 더 이상 성장하기 힘들다”면서 “초저전력화를 위한 신소자, 회로설계, 집적공정, 소재 분야의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워크숍 강연자로 나선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는 초저전력 반도체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 아이디어와 과제를 소개했다.
프란시스코 가미즈 스페인 그라나다대 교수는 D램 미세공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커패시터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임베디드 메모리 소자 구조를 주제로 강연했다. D램은 메모리 셀에 배치된 커패시터에 전하를 저장한다. 저장된 전하량으로 0과 1을 판단한다. 공정 미세화가 이뤄지면 셀 면적이 좁아진다. 이 때문에 캐패시터 용량을 사수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바닥 면적이 좁아지면 원통형 커패시터 수직 길이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바닥 면적 대비 수직 길이비가 높아지면 커패시터가 무너져 내린다. 시스템반도체 미세공정은 10나노 양산에 접어들었으나 D램은 아직 10나노 후반대에 머물러 있는 이유도 커패시터가 배치되는 구조적 한계 탓이다. 공정 미세화가 어려우면 전력소모량도 낮출 수 없다.
산업계 대표로 강연에 나선 이석희 SK하이닉스 D램개발부문장(부사장) 역시 “D램 산업이 꾸준하게 발전하려면 커패시터 구조 한계를 극복하거나, 새로운 구조가 상용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반도체 소재 업체인 소이텍의 프레드 알리버트 박사는 완전공핍형실리콘온인슐레이터(FD-SOI) 공정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 상보성금속산화막반도체(CMOS) 공정 인프라를 기반으로 더욱 낮은 전력을 소모하는 반도체 소자를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브람 나우타 네덜란드 트웬트대 교수는 아날로그 회로 설계에서 전력소모와 노이즈를 줄이는 방법론을 소개했다. 쥴리안 슈미츠 트웬트대 교수는 CMOS 공정으로 생산된 시스템반도체의 대기 상태 전력 누수를 줄일 수 있는 소자 기술을 발표했다.
실리콘을 대체할 기판 재료, AI 시대를 이끌어갈 뉴로모픽 칩, 빛을 활용한 실리콘포토닉스 기술도 화두였다. 타카기 신이치 일본 도쿄대 교수는 저마늄을 활용한 3-5족 화합물 기판 기반의 CMOS 모스펫(MOSFET)과 화합물 반도체를 기반으로 우수한 스위칭 특성을 갖는 터널링펫(TFET) 소자 기술의 개발 동향을 발표했다. 박병국 서울대 교수는 대용량 병렬처리가 가능한 사람 뇌를 닮은 뉴로모픽 칩 중요성을 언급했다. 프랑스 원자력청(CEA) 산하 전자정보기술연구소(LETI) 마리즈 푸르니에 박사는 전기 아닌 빛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실리콘포토닉스 반도체의 기술개발 사례를 공개했다. 이외에도 데브딥 제나 미국 코넬대 교수는 질화갈륨(GaN) 기반의 HEMT(High Electron Mobility Transistor) 소자를 활용한 초고속 테라헤르츠(THz)급 무선주파수(RF) 칩 상용화를 위한 한계 극복 과제를 소개했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국내 반도체 연구자의 자발적 학습의 장으로 기획한 행사에서 기존 미세화와 성능 확대 중심 R&D 방향에서 벗어나 전력소모 절감을 위한 다양한 발표가 진행됐다”면서 “AI, 자율주행차, IoT 핵심 부품은 반도체며, 반도체 저전력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미래산업 성공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