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예상을 뒤엎고 알파고가 압승하면서 진일보한 인공지능(AI)에 대한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알파고는 바로 구글이 인수한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AI시스템이다. 구글은 수년 전부터 AI 분야 인수합병(M&A)을 위해 무려 32조원 규모를 투자했고, 알파고는 그 대표 성과물의 하나다.
구글은 또 2013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비롯해 오토푸스, 봇앤돌리, 인더스트리얼퍼셉션, 메카로보틱스 등 로봇 관련 기업 M&A에 집중 투자했다. AI와 로봇은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주목받는 분야다. 이들 분야에 대한 구글의 M&A 확대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행보로 보인다. 일찍이 구글은 전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M&A에 적극이었다. 스마트폰 운용체계(OS)를 개발한 안드로이드를 인수해 스마트폰 생태계를 주도하고, 동영상 콘텐츠 플랫폼 유튜브를 인수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구글만이 아니다. M&A는 글로벌 기업이 혁신 역량을 획득하기 위해 선택하는 전략 대표 수단이다. 가입자 15억명을 넘어선 페이스북은 2012년 인스타그램을 1조원이라는 거액에 인수, 무리한 투자라는 우려를 샀다. 그러나 멀지 않아 모바일 광고 매출 8%를 담당할 정도로 핵심 사업이 됐다. 애플도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를 M&A로 실현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VR)과 같은 새로운 사업 추진을 위해 M&A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M&A는 대기업 입장에서 신사업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 수단이기도 하지만 벤처 투자자, 창업가 입장에서는 신규 창업에 투자한 자본을 회수해 또 다른 창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그 결과 벤처기업 창업이 활발해지는 토양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M&A에 대한 곱지 않은 인식으로 말미암아 대기업 등 잠재 매수 기업이 국내 벤처 인수 시장에 적극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인수 검토 기업이 혁신 기술을 보유한 벤처라면 대기업의 `기술 가로채기`가 아닌지 의심하고, 신사업 창출 벤처라면 중소시장에서 대기업 `문어발식 확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M&A라는 단어 앞에 `공격적` `적대적`이라는 부정 수식어가 따라붙기 십상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M&A 긍정 사례가 없지는 않다. 카카오는 김기사 내비로 유명한 록앤올, 음악서비스 멜론을 제공하는 로엔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활발한 M&A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AI 분야 비브랩스를 인수하는 등 전략에 따라 해외 기업 M&A에 활발하다. 하지만 국내 벤처에 대한 대형 M&A 소식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벤처 회수 시장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고 소요 기간이 오래 걸리는 기업공개(IPO)에 집중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M&A에 대한 부정 인식과 문화가 걷히지 않는다면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도 기대하기 어렵다. 인력 빼앗기나 경쟁 업체를 고사시키는 방식 같은 부정 M&A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한 경영 전략, 벤처 생태계 선순환이라는 측면에서 긍정 방향으로의 인식 전환이 절실한 이유다.
최근 우리나라는 미래창조과학부가 17개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 구축으로 창업 환경이 개선되면서 벤처기업이 3만개가 넘어서고, 벤처1세대가 투자자·멘토로 활동하면서 후배 창업가를 지원하는 등 제2의 벤처 창업 붐이 조성되고 있다. 예컨대 올라웍스를 인텔에 M&A하고 스타트업들을 보육·지원하는 퓨처플레이, 기업 매각 후 재창업을 이어 가는 파이브락스 등은 창업가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미래부 등 관계 부처는 대기업이 우수 벤처를 발굴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는 긍정 M&A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M&A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 노력과 국민 정서 및 기업 문화에 M&A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을 다각도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 kimsoo2@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