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정부는 부처별 고유 기능이 있다.
기관장은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 방향을 행정에 분명히 드러낸다. 취임 후 수개월 내에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느 정책에 집중할지 방향성을 제시한다. 기관장의 의지가 실린 정책은 당연히 추진력에 힘을 얻는다.
조달청이 최근 큰 정책 변화를 보이고 있다. 과거 물자 구매와 공급, 시설공사 계약 및 관리 위주의 조달 행정 패러다임이 기술과 품질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양상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조달청 하면 `발주`와 `계약`이 떠오를 만큼 기관 이미지가 깊숙이 박혀 있다.
변화는 올해 초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김상규 전 청장으로부터 시작됐다. 김 전 청장은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그는 청장 취임과 동시에 국내 소프트웨어(SW) 업계의 숙원인 `SW 제값 주기` 정책을 전면에 내걸고 SW 분할발주 시범 사업을 추진했다. 미래창조과학부나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나올 법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그는 발주 기관이라는 권한을 살려 뚝심 있게 추진했다.
지난 2월 취임한 정양호 후임 청장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산업부 출신인 만큼 벤처·창업기업 정책을 쏟아냈다.
신기술, 융합·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공공 기관에 판매할 수 있는 `벤처나라`를 오픈, 벤처기업의 판로 확대를 지원하고 나섰다. 벤처나라는 납품 실적이 없어도 최장 5년 동안 공공기관에 제품을 홍보, 납품할 수 있도록 한 전용 몰이다. 첨단 제품을 개발했지만 경쟁사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하지 못한 벤처·창업기업을 위한 정책이다.
취지가 신선하다. 하지만 전용 몰을 열어 놨어도 공공 기관이 외면하면 무용지물이다. 공공 기관이 앞장서서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구매 유인책이 필요하다.
조달청의 변화는 중소·벤처기업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이번 정책이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기업의 실제 판로 확보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한 정책 기획과 사후관리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