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기관들이 정보통신 공사 분리 발주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어 정보통신 공사 업계가 경영난을 겪고 있다. 관련 업계는 제대로 된 입찰 기회를 확보하지 못해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며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공 기관들이 건설 공사 입찰에서 통신 회선 및 방송 시스템 구축 등 정보통신 공사를 분리 발주하도록 한 법률을 외면한 채 예외 규정을 자의로 해석, 별도 발주를 하지 않고 있다. 환경부, 수원시, 국토교통부 부산지방항공청 등 공공 기관들이 1000억원 이상 건설 공사에서 정보통신 공사를 일반 건설 공사와 일괄 발주하는 `통합 발주` 방식으로 입찰을 진행했다.
24일 발주된 부산통합청사 신축 사업(915억원), 올해 말 발주 예정인 대구정부통합 전산센터 신축 공사(2424억원), 핵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 복합편의시설 공사(1042억원) 등을 포함하면 공공 기관의 신축 공사 통합 발주 사례는 늘 전망이다.
하지만 정보통신 공사의 통합 발주는 `(정보통신)공사는 건설 공사 등 다른 공사와 분리해 도급해야 한다`는 정보통신공사업법률(시행령 25조)과 배치된다.
법률은 정보통신 공사 등 전문 분야와 다른 공사 분야가 동시에 진행할 때 각각의 공사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보고 분리 발주를 규정했다. 공공 기관의 통합 발주는 대·중소기업 상생 발전을 위한 정보통신공사업법 취지와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정보통신 공사 업체 관계자는 “통상 대형 건설사가 통합 낙찰을 받아서 정보통신 공사 하도급을 준다”면서 “수수료 등 여러 명목으로 당초 정보통신 공사 예산보다 사업비가 줄기 때문에 `날림` 공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공공 기관이 하도급 관행을 부추겨서 전문성을 요구하는 정보통신 공사의 품질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다.
또 다른 정보통신 공사 업체 관계자는 “하도급인 경우 정보통신 공사 사업비가 최대 40~50% 급감한다”면서 “사업비에 맞추려면 인건비 등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인프라를 설치·구축하는 정보통신 공사가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통합 발주 이유로 내세우는 예산 절감도 설득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생산성본부의 분리 발주와 통합 발주 경제성 분석에 따르면 분리 발주는 공사 비용을 0.2% 절감한 반면에 통합 발주는 4.4%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정보통신 공사 업계는 공공 기관의 정보통신 공사 분리 발주 외면은 법률 위반 논쟁은 물론 관련 업체의 생존권 위협, 정보통신 공사의 품질 저하 등 크고 작은 부작용을 동시에 초래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정보통신공사협회는 “정보통신공사법률을 위반하면 500만원 벌금과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면서 “행정자치부, 감사원 등 중앙 부처에 개선을 지속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공공 기관은 관행과 편의를 이유로 통합 발주를 선호한다. 분리 발주 `예외 조항`을 앞세워 관련 법률을 우회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법률은 특허 공법 등 특수 기술이 적용된 터널·댐·교량 등 대형 공사와 비밀 공사, 긴급복구 공사 등 일부만 분리 발주 예외 대상 공사로 규정한다.
공공 기관 관계자는 “공사 성격상 분리 발주 예외 대상에 속한다고 판단, 통합 발주한 것”이라면서 “국토부의 심의도 거친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곽정호 호서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능정보 사회와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따라 건물은 디바이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정보통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정보통신 공사를 전문가가 시공, 최종 이용자의 편의성 극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일부 통합 발주가 발주자 선택권이나 비용 효율성 등 장점이 있다고 하지만 분리 발주와 통합 발주 경제성에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만큼 분리 발주를 통해 전문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정보통신공사업법 `도급 분리`와 예외>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