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역사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화두는 혁신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연구개발(R&D) 체제 정비가 급하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와 출연연은 혁신 대상이었다. 예산 대비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정치권 안팎으로 출연연의 변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1970년대에 만든 현재의 출연연 구분과 운영 시스템은 더 이상 4차 산업혁명을 담아낼 수 없다.
초기 혁신 방안은 출연연 통·폐합을 통한 효율성 제고 방식이 주로 논의됐다. 지난 2009년 산업기술연구회는 글로벌 컨설팅회사 아서 D 리틀에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 정책 연구를 맡겼다.
연구 보고서는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12개 출연연을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와 같이 단일 법인화해 중복 연구를 개선하고 행정 지원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출연연이 조사 대상 산업의 60%에서 R&D를 중복 수행,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당시 보고서를 통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재료연구소, 전자부품연구원 등 부품·재료 부문을 합쳐 `부품소재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연구 효율화 방안 등이 나왔다. 기관 민영화, 기관 법인 해체 후 센터 운영 방식도 언급했다.
같은 해 11월에 출범한 과학기술출연연 발전 민간위원회도 거버넌스를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위원회는 산업기술연구회, 기초기술연구회를 공동 자문 기구로 하여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 작업을 추진했다.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이 위원장으로 활동, 위원회에 힘을 실었다. 위원회는 출연연 및 출연연 노조, 과학기술단체, 시민단체 등과 100차례 이상 간담회를 열고 보고서를 도출했다.
보고서 중점 내용은 국가연구개발위원회 신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강화였다. 출연연 법인 해체, 단일 법인 통·폐합 방안도 포함했다.
통·폐합 등 혁신 방안은 출연연 연구 효율성 제고 방안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출연연 노조 등의 반대로 정책에 반영되지 못했다. 다만 현재 일원화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체제 출범에는 영향을 미쳤다. 가장 중요한 거대 출연연으로의 통합은 빼놓고 위원회만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과학 분야를 총괄하는 미래창조과학부는 `1·2차 R&D 혁신안`을 발표하며 재차 출연연 혁신 논의에 불씨를 댕겼다. 매년 막대한 예산을 받는 출연연이 산업 현장 R&D 수요와 별개로 운영돼 제대로 된 성과 창출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정부 R&D 투자는 2003년 6조5000억원에서 올해 19조1000억원으로 크게 늘었지만 성과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는 지난해 1차 출연연 혁신안을 마련했다. 출연연이 미래 선도형 기초과학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성과주의예산제도(PBS) 비중을 축소하는 한편 민간 수탁 실적과 연계한 출연금 배분(프라운호퍼 방식)을 적용, 출연연·기업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국가 R&D 거버넌스 혁신, 우선순위에 따른 예산 배정을 위한 과학기술전략본부도 1차 혁신안에 따라 신설됐다.
지난해 5월에 나온 2차 혁신안은 출연연 내 연구 환경 개선이 중점 사항이었다.
최근 출연연 내부 혁신 목소리도 고개를 들었다. 출연연의 연구 효율성을 높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취지다.
25개 출연연이 모인 `출연연 혁신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8일 약 4개월 동안 만든 혁신안을 공개했다. 출연연 역사에서 최초로 진행된 상향식(Bottom-up) 혁신안이었다.
혁신위는 이 자리에서 △연구 경쟁력 혁신 △시스템 경쟁력 혁신 △인재 문화 경쟁력 혁신의 3대 전략을 제시했다.
출연연 간 장벽을 허물고 10년 동안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프런티어·문제해결형 연구`가 눈길을 끌었다. 프런티어형 연구기획 전문가를 고용, 연구자의 비위 행위를 사전 차단한다는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혁신위는 1월 출연연별 세부 계획을 통해 추가 혁신 방안을 밝힐 예정이다.
정순용 출연연 혁신위원장은 4일 “출연연이 직접 나서는 첫 혁신 방안인 만큼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면서 “국민의 이해와 출연연 내부 공감을 끌어내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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