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 배경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있다. 1960년대에 변변한 기술도 연구개발(R&D) 환경도 없던 척박한 곳에 과학 기반을 세운 것이 출연연이다.
출연연은 초기에 선진국의 과학 기술 국산화에 바쁘기만 하던 우리나라를 50년에 걸쳐 정보기술(IT) 강국, 첨단 선도 과학 기술 개발국으로 성장시켰다. 긴 시간 국가만 감당할 수 있는 기초연구, 거대 국책 과학 프로젝트를 담당해 오면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출연연의 확립을 위한 거버넌스 논의도 계속 이어졌다.
◇KIST부터 시작한 출연연 역사…국가R&D 틀 확립
출연연의 역사는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됐다.
KIST는 베트남전 파병을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금이 모태다.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이 주를 이루던 1960년대에 과학 기술을 통해 경제 산업을 뒷받침하겠다는 취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학이 곧 경제 성장 원동력`이라는 과학 입국 철학도 반영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우리나라에 적합한 과학 기술 분야를 찾고 체계화된 발전 방안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KIST는 1967년 `국가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수립, 과학 기술 진흥을 위한 장기 전망을 연구했다. 당시 생활필수품을 간신히 생산하던 경공업 산업 구조를 중공업 구조로 탈바꿈하기 위한 밑바탕이었다. 연구 결과 철강·중기계·조선 등 중공업 분야 청사진이 도출돼 포항종합제철공장, 삼미종합특수강 공장 등 설립의 성과로 이어졌다.
1970년대에는 출연연 기관이 확대되면서 국가 R&D 틀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경공업 산업 구조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전환되는 격변기로, KIST만으로는 연구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업 역량이 발전하면서 산업 분야별 R&D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결국 1973년 `특정연구기관육성법`이 제정, KIST를 모체로 세분화된 전문 연구기관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기계금속연구소, 한국화학연구소, 한국표준연구소, 한국원자력연구소 등 16개 출연연이 그때 대덕연구단지(현 대덕R&D특구) 일원에 만들어져서 외국 선진 기술을 개량·국산화했다.
◇대규모 투자로 과학강국 초석…연구 효율성 문제 제기도
1980~1990년대에는 출연연에 대한 대규모 R&D 투자가 시작된 시기다. 단순히 물건을 만들고 파는 것을 넘어 `팔릴 만한 물건` 개발이 더 유리하다는 사회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정부는 출연연 R&D 성과 모델을 민간에도 적용했다. 기술 개발 자금 지원, 관세 감면, 조세 지원, 연구 요원 병역 특례 제도 등을 기술 개발 유인 시책으로 적용하기도 했다.
출연연 효율 관리를 위한 통·폐합 논의도 이때 시작됐다. 전두환 정권기인 1981년에는 16개 출연연이 9개로 통·폐합, 당시 R&D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처 산하로 일원화됐다.
1990년대에는 출연연 구성 20여년이 흐르면서 눈에 띄는 성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져 갔다. 정부 투입 예산 대비 출연연의 실적이 미흡하다는 비판이었다. 이에 따라 1991년 3월 노태우 대통령 지시로 국무총리실 주재의 관련 부처 합동평가단이 구성돼 22개 출연연에 대한 정밀 점검 합동 평가를 실시했다. 그러나 때마침 과학기술 성과가 본격화되면서 출연연의 위상이 강화됐다. 현재 `IT 강국 코리아` 초석도 1980년대 말 무렵부터 마련됐다.
대표 사례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1988년 초고집적반도체 4M D램을 개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를 시작으로 16M(1991년), 64M(1992년), 256M(1994년) D램을 연속 개발해 냄으로써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 축적 성과를 거뒀다. 세계인이 사용하는 디지털이동통신시스템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도 1996년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가 상용화에 성공했다.
출연연은 이들 성과를 발판으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에도 역할과 기능을 유지했다. 정부는 `출연연 등의 설립 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 출연연을 국난 극복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효율 높은 거버넌스 모색 여정
2000년대 들어와 출연연은 `추격형 연구`에서 벗어나 차츰 `선도형 연구`를 통해 첨단 원천기술 개발·발굴에 나서고 있다.
대표 기관으로 국가핵융합연구소는 미래 기술인 핵융합에너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핵융합연은 핵융합로 고성능 운전 시간 최고 기록을 매년 경신하고 있다. 세계 과학 기술 선진국이 함께 핵융합에너지를 연구하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에도 주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R&D 성과와 달리 출연연 조직 및 관리 구조는 마땅한 형태를 찾지 못한 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연구회`가 출연연을 관리·감독하는 체계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새 정권 때마다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1999년에는 기초·산업·공공기술연구회 체계가 만들어지면서 출연연들이 국무조정실 산하로 재편됐다. 여러 부처가 출연연을 공동 감독하는 체제가 도입된 것이다. 2004년에는 과학기술부총리 체제가 신설되면서 과학기술부 산하 혁신본부가 3개 연구회를 전담 관리했다.
출연연은 2008년 정부 직제 개편으로 재개편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공공기술연구회는 폐지되고 산업기술연구회는 지식경제부, 기초기술연구회는 교육과학기술부로 각각 이관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다시 2개 연구회 체제가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일원화되는 등 현재 진행형의 출연연 관리 체계 변동을 이어 가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연혁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