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유연한 지식재산(IP)은 제4차 산업혁명에서 승자의 조건이다`
지식재산(IP)을 둘러싼 글로벌 환경이 요동치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4차 산업혁명. 지난해 1월 `다보스 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를 주제로 정보통신기술(ICT)이 인류에 가져올 변화를 점쳤다.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ICT 관련 기술 대부분이 산업혁명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사물인터넷(IoT)·로봇공학·3D 프린팅·빅데이터·인공지능(AI)은 5대 기술로 꼽혔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권리보호, 신기술이 생산하는 창작물에 대한 권리 부여, 온라인상 저작물 불법 유통 등 새로운 이슈도 부각됐다.
4차 산업혁명은 신기술이 경제·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유발하며 ICT, 제조업·생물학 기술 등 신기술 간 융합이 주도하는 시대다. 디지털 세계와 생물학적 영역, 물리적 영역 간 경계가 허물이지며 기술 융합이 일어난다.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세계 각국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제조업과 인터넷이 융합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주요국은 혁신을 구현한 지식재산을 경쟁 우위로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치열한 IP 경쟁에 돌입했다. 특허를 단순한 R&D 결과물이 아니라 기업 생존자산으로 바라보고 신기술 IP 선점 경쟁에 나섰다.
선진국 기업이 선 IP-후 R&D, 기업간인수합병(M&A), IP 라이센싱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신기술 IP 선점을 위한 분쟁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를 방증하듯 세계적으로 4차 산업과 연관된 빅데이터·분석, IT 시스템 보안, 3D 프린팅 등 7개 핵심 산업분야의 세계 특허등록 건수는 5년 만에 12배 증가했다. 2010년 421건에 불과했던 특허등록건수는 2013년 2794건, 2015년 5107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국제 IP 분쟁도 국가 간 보호 무역과 맞물려 심화되고 있다. 자국 특허침해 물품의 수출입 금지를 강화하는가 하면 2014년 나고야 의정서 발효를 계기로 생물자원 부국들이 자국의 생물·유전 자원에 대한 권리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선진국의 발빠른 대응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책 제시가 늦었다. 우리나라는 5년(2011~2015년)간 세계 4위 특허출원건수를 기록하고, 지난해에는 표준특허 점유율 세계 5위(824건)로 도약하는 등 양적 성장을 거듭해 왔다. 정부 연구개발(R&D)이 꾸준히 증가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19조원)를 기록했다. 그러나 성과로 창출된 IP 질적 수준은 크게 뒤처졌다.
지난해 우수 특허 비중은 전체의 13%(2016년 기준)에 불과했고, 원천특허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IP 무역 수지 절자 현상이 지속돼 왔다. AI 등 신기술 분야 특허에서도 우리나라는 1600건(2016년 기준)으로 일본(2400건)과 미국(4800건)에 비해 크게 못 미쳤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3일 `제2차 국가지식재산기본계획`을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IP 선점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정책이다.
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IP 국가 경쟁력 확보`를 비전으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4조700억원을 투입해 △고품질 IP 창출 및 사업화 활성화 △중소기업의 IP 경쟁력 제고 및 보호 강화 △글로벌 시장에서의 IP 활동 지원 강화 △디지털 환경 하에서의 저작권 보호 및 공정 이용 활성화 △IP 생태계 기반 공고화를 5대 전략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지식재산 전문가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허인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박사는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제4차 국가지식재산기본계획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IP 정책을 제시한 것은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어떻게 실행하느냐다. 허 박사는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IP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서는 계획에 맞춰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국가 지식재산 거버넌스 이야기다. 관할 부처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현 정부는 국가 지식재산 컨트롤타워로 미래창조과학부에 국가지식재산위원회(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위원회는 과학·기술 분야 특허와 문화·예술·콘텐츠 분야 저작권 등 다양한 지식재산을 창출·활용하기 위한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정부 정책을 조율한다.
설립 5년이 지난 지금 위원회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됐지만, 지식재산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위원회의 사무처 역할을 맡은 지식재산전략기획단(기획단) 조직이 전혀 전문적이지 않다. 게다가 잦은 인사로 사업 추동력도 상실했다.
지식재산 관련 전문성을 가장 많이 갖춰야 할 조직임에도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산업통상자원부·문화부·미래부 등 여러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로 구성된 때문이다. 이들은 1년이 지나면 되돌아간다. 기획단은 잠시 거쳐 가는 자리에 불과하다. 핵심 보직인 지식재산정책관은 1년간 4차례나 바뀌었다.
지식재산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특허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서는 IP 컨트롤타워 위상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면서 “이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판을 다시 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발표한 국가지식재산기본계획은 현실성이 없는 계획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은 때문이다. 정부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4조700억원을 들여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지재위가 이런 큰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지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기획재정부에서 갑자기 그 많은 예산을 마련해 주겠느냐는 얘기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지식재산 전문가는 “정부 목표와 계획이 이상적이지만 이를 실행할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구호에 그칠 수 있다”면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특허 분야 정부 조직을 유사한 기능을 하는 부처와 통합해 보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확대하는 정부조직 거버넌스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